일본 문화재로 지정된 우리사발
일정 시대 일본에서는 조선의 문화재를 식민지 물건이라 하여 단 하나도 국보로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1951년 일본은 우리의 제기 사발이었던 진주 사발(이도자완) 중 대표적인 것 하나를 골라 국보로 지정하고, 그 외의 다른 진주 사발들을 중요문화재(보물)와 중요미술품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 사발들이 아직도 '잡기'인 줄 알고 있습니다. 이 사발들이 '잡기'가 아니라 조선 초 진주목 지방의 민가용 제기였음을 필자가 밝혔습니다. 일본 국보 사발은 왜 조선의 제기인가? <필자주>
이번에는 조선 초 지방가마에서 만든 식기 사발과 사발보다 조금 작은 보시기 중에서 일본인이 문화재로 지정한 것을 한국인의 입장에서 재해석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일본 분류명 – 가타테자완 명 – 나가사키 소장 – 네즈 미술관 생산지 – 지금의 남한 전지역 용도 – 생활도구 한국 분류 – 지방 조질백자 일본 중요문화재 경질 백자는 고화도로 구워져 단단하게 느껴지는 지방가마의 백자입니다. 경질 백자란? 도자기 흙, 즉 태토가 열을 받아 자화(자기화)된 것으로 강도가 강합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환원불(불때는 기법)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한국 골동상에서는 이런류의 사발을 '땡땡이'라 부릅니다. 굽부분에 유약이 묻혀 있지 않습니다. 조선초 지방가마에서는 굽부분에 유약을 바르지 않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었습니다. 아래 눈박이가 3개인 특이한 것입니다. 이름이 나가사키인 이유는 교토의 의사 나가사키 쇼사이가 소장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일본인들은 지방가마의 연질백자와 경질백자를 합쳐서 카타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연질백자는 태토가 자화(자기화)되어 있지 않아 퍼석퍼석하게 느껴지고 강도가 약한 백자입니다. 그러나 찻물이 잘 들어 다도 세계에서는 인기가 있습니다. 가타테라 이름 붙인 모든 사발은 우리나라의 남한 전역에서 조선 초기에 만들어 졌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런 류의 사금파리(도자기 파편)가 옛성이나 유적에서 많이 출토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조선 초기 이런류의 사발이 일본으로 많이 건너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생산지가 김해라고 추정했으나, 지금의 남한 여러 곳에서 생산되었습니다. 용도는 생활도구로 사용한 사발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진주사발도 이 사발과 같은 백자입니다. 진주 사발은 철분 많은 백자흙이 불 때는 기법에 따라 노랗게 발색된 것입니다.
일본 분류명 – 아마모리카다테 자완 명 – 소장 – 네즈 미술관 생산지 – 지금의 남한 전지역 용도 – 생활 용기 한국 분류 – 지방 연질백자 일본 중요문화재 일본은 위의 사발은 아마모리카타테라 분류합니다. 이 뜻은 마치 빗물이 흘러든 것처럼 보인다는 뜻입니다. 부분적으로 몸에 긁혀있듯이 유약이 묻어 있지 않은 부분은 조선 사기장의 여유를 느끼게 합니다. 물레선이 힘차며 조선시대의 지방 가마의 백자 사발입니다. 이 사발을 과학적으로 말하면 태토에 알미나 성분이 많아 태토가 자화되지 않았고, 굵은 입자가 태토에 많이 섞여 있어서 태토 속에 미세한 빈 공간이 많아 찻물이 잘 스며드는 연질 백자입니다. 이 사발은 분류명은 있으나 이 사발의 개인이름, 즉 명은 없습니다. 일본에는 이름(명)없는 유명한 찻사발이 더러 있습니다. 이 사발을 보면 사대부들이 백자를 좋아하자 그것을 뒤따르려 한 노력이 보입니다. 사실 이 사발은 정제하지 않은 백자흙으로 빚어진 것입니다. 사실 조선초 지방의 민가에서 백자흙 만들기는 아주 힘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인력과 정성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분류명 – 카키노헤타 명 – 곤사몬도 소장 – 네즈 미술관 생산지 – 경남 양산이라는 설이 있으나 아직도 연구중 용도 – 생활용기 한국 분류 – 분류되어 있지 않음 필자는 지방 가마의 토미 보시기이라 칭함 일본 중요문화재 감꼭지 모양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태토는 옹기토인 쪼대흙, 즉 점토입니다. 유약은 옹기의 유약인 잿물인 것 같습니다. 백자토는 카오링이라는 백토가 주성분이고, 점토는 흔히 야산에 있는 흙 중에서 찰기있는 흙입니다. 이 유형의 보시기는 아주 수가 적습니다. 슬픈 아름다움이라 할까 꾸미지 않은 원시적 자연미를 풍미하면서 흙 맛을 가장 잘 간직한 보시기(사발보다 작은 그릇)입니다. 일본에서는 처음에 베트남 사발이라고 추정하는 적도 있었으나, 조선에서 만들어진 것은 확실한 보시기입니다. 흙 맛이 너무 좋습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임진왜란 전에 일본에 건너간 것과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의 주문에 의해 건너간 것 두 종류로 분류해야 하나 일본에서는 아직도 분류되어 있지 않습니다. 최근에 이런 류의 보시기 하나가 센노리큐가 애용하다 호소카와에게 양도한 물건임이 증명되어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에 건너간 것과 임진왜란 후에 건너간 것을 분리해야 한다는 필자의 생각에 더욱 확신이 생깁니다(센노리큐는 임진왜란 2년전에 활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것의 가마터를 아직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런 류의 보시기중에서 임진왜란 후의 일본 주문품은 양산 법기리 가마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발을 정확히 연구하기 위해 양산 법기리에 있는 양산사발 가마터를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 후에 주문한 이런류의 보시기와 임진 왜란 전에 건너간 보시기의 차이점을 확실히 증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크기가 사발처럼 보이기도 하고 보시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필자가 옛날에 양산 토미 사발이라 칭한 적이 있습니다만 사발보다 보시기에 가깝습니다.
일본 분류명 – 고쇼마루 명 – 석양 소장 – 하다케야마 미술관 생산지 – 김해로 추정 용도 – 일본 주문용 찻사발 한국 분류 – 연질백자 일본 중요문화재 고쇼마루는 일본 어용선 이름입니다.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정벌하고 나서 조선으로 타고 갈 배의 이름이 고쇼마루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과 의병들 그리고 명나라 군대에 의해 패배한 토요토미는 조선 땅에 오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토요토미가 죽은 후 일본에는 도쿠카와 정권이 탄생합니다. 이때쯤 조선은 일본의 간청을 받아들여 정식 수교하게 되고(1607년), 그 당시 토쿠카와의 다도 사범인 후루타 오리베(古田織部)는 자기가 좋아하는 조선의 제기(모사기로 추정)를 모델로 하여 김해 부근의 조선 사기장에게 사발을 의뢰하여 만들어진 찻사발이 고쇼마루입니다. 이 사발의 태토는 지방의 연질 백자이나 일본 주문품이라 조선의 도자기와는 조금 달라 보입니다.
일본 분류명 –미즈샤시(물통) 명 – 소장 – 세이가토 미술관 생산지 – 15C 고령지방 용도 – 생활 용기 한국 분류 – 분청 항아리 일본 중요문화재 일본에서 우리나라 도자기를 문화재로 지정한 것을 국보인 기자이몽이도라 불리는 진주 멧사발을 시작으로 이와 같은 분류인 진주 사발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는 조선초의 지방 가마의 사발과 고려 청자입니다. 우리나라 백자의 심볼인 관요 백자는 한점도 없으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분청이 있어 여기서 소개합니다. 이것은 조선초 지방에서 빚어 중앙에 납품한 소항아리입니다. 이것을 일본의 다도에서 물을 저장한 물통으로 사용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다도에서 사용하는 도자기는 '다도구'라 하여 일반 도자기 보다는 격이 높고 대체적으로 가격도 비쌉니다. 일본에서 이 항아리가 중요문화재가 된 것은 이것을 일본 다도세계에서 오랫동안 사용한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족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골동상이 이런 말을 합니다. "한국에서 요사이도 골동품 사발을 팔려고 가져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무덤에서 나온 것은 골동가치는 있는지 몰라도 찻사발로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유명한 찻사발이 아주 비싼 이유는 그 찻사발이 가지고 있는 족보값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골동 사발보다는 현대의 유명한 도예 작가가 빚은 찻사발이 휠씬 비싸고 거래도 잘된다." 요사이 우리나라에도 차 마시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또한 사발에 가루차(말차)를 마시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망자의 무덤에서 나온 골동 사발로 가루차를 마시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 골동 사발은 죽은 망자의 것입니다. 꼭 무덤에서 나온 골동 사발로 차를 마시고 싶으면 스님, 신부님, 목사님을 통해 망자의 넋을 위로한 다음 그 뒤에 골동 사발을 찻사발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국보로 지정된 사발 두점을 소개하겠습니다.
(좌)는 12세기 고려 청자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가루차(말차)를 많이 마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말차잔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도 많이 있습니다. (우)는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질감입니다. 이것은 조선초 지방가마에서 '백고려'라고 불리는 고려 백자의 기법으로 빚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문양의 선은 예리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풍깁니다.
| ||||||||||||||||||||||||||||||||||||||||||||||||||||||||
|
출처 : 내장산제다원
글쓴이 : 심산 박동규 원글보기
메모 :
'명화.이미지.도자기 > 명품 도자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한국 자연미의 결정체, 계룡산 도자기 (0) | 2008.11.29 |
|---|---|
| [스크랩] 일본이 보물로 지정한 고려청자 (0) | 2008.11.29 |
| [스크랩] 국 보 도자기 (0) | 2008.11.29 |
| [스크랩] ♣. 중국의 국보급 도자기 (0) | 2008.11.29 |
| [스크랩] 한국의 옹기 (0) | 2008.11.2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