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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에 납치된 사기장 이야기

美人完成 2008. 12. 14. 02:30

일본에 납치된 사기장 이야기

 

 

일본인이 차사발 전쟁이라 부르는 임진왜란 때, 강제로 일본으로 끌고 온 조선인들을 그들은 피로인이라 부릅니다. 왜? 전쟁 포로라 부르지 않을까요?

▲ 동국심속삼강행실도.
ⓒ 서울대 규장각
이유는 전쟁 포로는 군인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피로인은 전쟁에 가담하지 않은 민간인 예컨대 장인, 부녀자, 학자, 어린아이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형님의 아들 가련은 나이가 여덟 살인데 주리고 목말라서 짠 소금물을 마시고 구토 설사하여 병이 나자 적이 물 속에 던지니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오래토록 끊어지지 아니하였다."

이 글은 임란 때 일본으로 끌려갔다 귀환한 선비 강항이 간양록에서 일본으로 끌려갈 때, 그 상황을 서술한 글입니다. 일본인은 이 피로인들을 제3국에 노예로 팔기도 하고 일부는 포로 송환 때 조선에 돌려보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피로인 속에는 조선의 사기장 같은 장인들은 특별히 대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은 각 지방을 영주가 집적 다스리는 분권제였습니다. 이 영주를 다이묘라 불렀고, 다이묘에게 있어서는 조선장인, 특히 사기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해당되었습니다.

일본은 처음에는 조선 사기장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억류시켰다가 그 후 마치 왜군들의 전리품인 양 여러 다이묘들이 사기장들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리고 조선 사기장들은 야마구치현 하기를 제외하고는 큐슈지방에 분산 배치됩니다만, 특히 옛날에 히젠이라 부르는 곳에 집중 배치됩니다. 히젠은 지금의 일본 규슈지방의 북서부, 아리따 야끼가 유명한 사가현 그리고 일본의 개항지인 나가사키 항까지 포함된 넓은 지역입니다. 이곳에 배치된 조선 사기장들은 처음에는 이 지역의 다이묘의 명령에 의해, 또 도자기 흙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닙니다.

▲ 임진왜란 이전의 카라쯔야끼.
ⓒ 개인소장

일본은 400여년전 옛날에, 여기서 나온 도자기를 히젠야끼라 불렀습니다. 히젠야끼 중에서 도기는 카라쯔야끼, 자기는 아리따야끼로 유명합니다. 도기는 우리나라 말로 하면 분청사기, 자기는 백자입니다.

그러면 일본인이 히젠도기라 불렀던 카라츠야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카라쯔야끼란 카라쯔라는 지방에서 굽는 도자기입니다.

이 카라쯔는 부산에서 비행기로 40여분, 쾌속선으로 약 3시간 정도 걸리는 후쿠오카현 바로 옆, 사가현에 속해 있습니다만 이곳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왜구의 소굴로 유명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왜구들이 임진왜란 전에 우리의 북녘 땅 함경도의 회령, 명천군에서 조선 사기장을 납치해 갑니다.

 


 

 

▲ 북한의 회령도자기. 북한의 문화재.
ⓒ 서울대학출판부
옛날의 일본의 도자기 수준은 한반도에서 배운 토기(도기) 정도를 빚을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만, 15세기부터 왜구들이 납치한 조선 사기장에 의해 시유도기, 즉 유약을 입힌 도자기를 빚게 됩니다.

그런데 왜구들이 납치한 조선 사기장들은 어디서 어떤 도자기를 빚던 사기장일까요? 이 분들은 한반도의 최북단, 함경도의 회령, 명천 부근의 사기장이었습니다. 이 분들이 빚은 도자기를 필자는 회령 도자기라 부릅니다.

이 회령도자기는 우리 남쪽 사람은 잘 모르지만, 현재 북한에서는 아주 유명합니다. 그러고, 회령도자기의 도자기 기법은 남쪽의 청자, 분청, 백자와는 전혀 다릅니다.

▲ 조선 카라쯔. 회령기법 차사발. 다나카 사지로 作.
ⓒ 다나카 사지로

이 회령의 사기장들이 임진왜란 전, 일본에 끌려가 왜구의 본진, 카라쯔를 중심으로 서 일본 여러 곳에서 도자기를 빚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남쪽에서 납치된 조선 사기장이 합류됩니다. 이것이 바로 카라쯔야끼의 시작입니다.

지금은 카라쯔야끼를 종류별로 구별할 때는 오크코라이, 조선카라쯔, 마다라카라쯔, 그냥 카라쯔 등 여러 이름으로 분리합니다만, 이 중 앞의 3종류는 북녘 땅 회령 도자기 빚는 기술입니다.


 

 

▲ 오크코라이 자완. 일본의 중요문화재
ⓒ 화천시소장
회령도자기는 함경도 사발 이야기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만, 오크코라이 뜻을 설명하겠습니다. 오크는 우리말로 오지를 뜻하고 코라이는 조선인을 말합니다.

즉, 오지에서 온 조선인이 만든 도자기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오지가 바로 회령입니다. 왜정시대, 회령오지는 유명한 우리 민족의 특산품이었다 합니다.

카라쯔에 납치된 조선 사기장들이 회령 도자기 기법만 가르쳤을까요? 아닙니다. 흔히 도자기 빚는 것을 보면 물레가 빙글빙글 돕니다. 이 도는 것은 대장이 물레 밑에 붙은 발판을 차기 때문입니다.

발로 차서 물레를 돌려 도자기 형을 빚는 것을 발물레라 하고 그냥 앉아서 손으로 돌리는 것을 손물레라고 합니다. 일본에는 그 전에 이 손물레만 있었습니다. 발물레는 손물레에 비해 훨씬 고급 기술입니다. 이 발물레가 임란 때 끌려간 사기장이 가르친 기술입니다. 현재 일본 사기장들은 대부분 발물레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백자를 만드는 기술도 남쪽 사기장에 의해 일본에 전달됩니다.

▲ 차사발의 명인. 나가자또 시게토시.
ⓒ 나가자또

이곳 카라쯔야끼를 대표하는 사기장은 누구일까요? 나가자또라는 일본 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현재는 13대가 나가자또 다로우에몽입니다. 이 가문은 한요라 부르는 즉, 우리말로 하면 지방정부에 납품하는 관요의 사기장 가문이었습니다.

조선에서 끌려간 사기장, 즉 이 가문의 시조, 초대 나가자또는 고향은 김해인지 김해 부근의 웅천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옛 일본 문서에 그의 조선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又七' 조선식으로 하면 또칠입니다.

 

 

 


 

▲ 카라쯔야끼. 남쪽 사기장기법.
ⓒ 개인소장.
이 사람을 생각하다보니 언젠가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에서 발행된 기록이 떠오릅니다.

"1636년 조선통신사가 귀국하는 길에 통역관 강우성은 포로로 잡혀온 동포들에서 유시문을 보이며 사가현의 카라츠에서 귀국을 호소하였지만, 신고하러 나오는 자가 없고, 카라츠의 고려마을에서 도자기 굽기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는 공허함을 느끼기도 하였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필자도 처음에는 일본에 있는 조선계의 도자기 가마 종사자들이 한국인 의식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으나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솔직히 그 사람들은 완전한 일본인이라는 생각을 지금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임란 때 끌려간 사기장들 중 계속 대를 이어 지금도 도자기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지역을 상징하는 사람으로 대우받고 있습니다.
2004-12-22 14:44 ⓒ 2007 OhmyNews

출처 : 내장산제다원
글쓴이 : 심산 박동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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