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의 이해/세계종교 자료1.

[스크랩] 이슬람교 2

美人完成 2008. 10. 13. 03:29
 

이슬람교 


이슬람교는 아랍인들을 통일하는 힘으로서 아랍인 사이에 뚜렷이 살아 있으며, 그것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 생활의 수단이기도 하다. 종교적인 유대가 대단히 강하기 때문에, 이슬람을 통일하는 힘은 같은 신앙에 대한 집착에서 생겨날뿐더러 그것 이상으로 사회기구, 생활방식으로부터도 생겨나고 있다. 더욱이 이슬람교의 성전 꾸란은, 아랍어가 지방마다 약간씩 달라져 가는 방언으로 말미암아 무너져가는 것을 막고, 그겋게 함으로써 사고와 표현의 일체화를 표현의 일체화를 유지하여 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슬람은 단지 이슬람교도들의 것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를 신봉하는 아랍인에게도 유산으로 되어 있다.


이 이슬람교가 생기게된 발생원인과 그 근원자 무함맏을 조사하고 그들의 신학을 알아보며 그들의 삶속에서 감정과 예술․문화․과학등을 조사함으로 이슬람을 좀더 이해해보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이슬람의 현황을 파악하며 이슬람의 선교의 장애를 찾아보고 그 가교로서의 선교전략을 기록하여보았다. 내가 기록한 선교전략은 많은 부분중에 한계적 부분임을 인정하고 이 글을 통해 각자가 이슬람을 준비하는 초석이 되길 기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글을 통해 이슬람을 향한 중보기도가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제 2 장 이슬람의 의미와 무슬림

이슬람이라는 어휘는 평화, 순결, 순종 및 복종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아람어의 "쌀라마"라는 동사 어근에서 파생된 것이며 종교와 샤라야(이슬람법)의 차원에서 본 이슬람의 개념은 창조주와 절대자의 목적과 의지에 순종하고 창조주의 법칙에 복종한다는 뜻이다. 언어적 측명에서 본 이슬람의 의미와 그리고 종교와 샤라아 측면에서 본 이슬람의 의미가 제시하듯이 인간의 진정한 현재의 평안과 영원한 내세적 평온은 창조주의 의지에 순종하고 창조주의 법칙에 복종함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이슬람의 근본 핵심이다. 무슬림이라는 의미는 이슬람을 믿고 따르는 인간, 즉 창조주 절대자만을 믿고 순종하며 창조주의 법칙에 절대 복종하는 인간들을 가리킨다. 그 가운데서도 아담을 비롯해서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그리고 무함맏은 창조주 한 분만을 경배하였고 창조주 법칙을 가장 잘 준수하고 따랐기 때문에 가장 훌륭한 무슬림이었다.


이슬람의 형성

이슬람은 유대교, 기독교와 함께 하나의 신을 섬기는 유일신교이다. 역사 속에서 그것을 또한 유대교, 기독교와 같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유래하는 공통의 믿음의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슬람교도인 무슬림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와 같은 이슬람의 세계 역사 속에서의 형성과 발전에 대해서 이야기하여 보자.


이슬람의 출현전 아라비아

이슬람발생 이전의 시대를 무실림들은 자할리야라부른다. 이 명칭은 아랍사람들이 이슬람에 개종한 이후에 붙인 것으로 무지라는 뜻 외에도 신앙의 암흑시대라는 뜻도 숨어 있다. 또 이 시대를 아랍 알 야움(그날의 아랍인)으로도 부른다. 즉 철부지시절의 아랍사람이란 뜻이다. 이 두 명칭은 은연중 이슬람을 광명으로 보는 시각에서 나온 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시대는 이슬람발생 이전 200-300년간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시기는 이슬람의 수임 기간이라 볼 수 있다. 이슬람이 발생한 직사각형의 아라비아 반도는 그 넓이가 약 300만 평방㎞로서 인도 아 대륙에 버금갈 정도로 크다. 그러나 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예멘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강우량이 적어서 대부분 사막과 같은 건조 지역이다. 중앙 지역에 높은 산들이 있기는 하나 만년설이 쌓일 정도로 높지는 않아 하천에 물을 일년 내내 흘러 보내지 못한다. 간혹 비나 눈이 내릴 때에만 하천 역할을 하는 물길을 아랍인들은 와디라 부른다. 반도의 내륙에는 광대한 사막이 펼쳐 있고 그 주변에는 넓은 초원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반도 곳곳에는 오아시스가 흩어져 있다. 이런 반도에는 베두윈(사막의 유목민)과 오아시스의 정착민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둘 다 부족 단위로 공동생활을 영위하였다. 베두윈은 넓은 사막을 배회하면서 초원을 찾아 방목하여 생활을 꾸려 나갔으며, 오아시스의 정착민은 농경 생활을 영위하거나 상업 활동을 통하여 생계를 이어 나갔다. 이 반도의 부족들은 늘 서로 싸웠으며, 부족의 구성원들은 자기 부족을 위해 싸우는 것을 명예로 알았다. 당시 아라비아 반도의 신앙 형태는 다신교였고, 애니미즘적 성격이 강한 원시적인 것이었다. 기원전 70년경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에 유대교의 아라비아 반도의 침입은 시작되었다. 홍해 연안을 따라서 남하한 유대교도는 야스리브(메디나)와 예멘에 정착하게 되었다. 반도 북부 변경에는 기독교 단성론과 네스토리우스파가 들어왔다. 중부의 히자즈 지방이나 남부의 나즈란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정착하고 있었다.


마호멧의 출생 당시 아라비아와 멕카

마호멧이 출생할 당시 아라비아인은 대개가 유목민이었는데, 그들은 사막의 가혹한 기후 때문에 한곳에 정책하질 못하고 낙타와 양떼를 몰면서 살았다. 사막의 유목민에게는 낙타가 가장 유용한 동물이며, 수송의 수단으로는 귀중한 것이었다. 아라비아인은 낙타와 염소의 젖과 고기에 생계를 의존하였고, 두발의 털과 가죽으로 의복과 천막을 만들었다. 이러한 그들의 궁핍생활은 행동에 잘 나타났는데, 반목과 공격으로 나타났다. 남성다운 태도와 환대를 가장 으뜸되는 미덕으로 여겼으나 한편으로는 미신과 괴이한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거주지는 멕카였다. 멕카는 시리아와 예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어서 고대에는 이곳이 가장 중요한 상거래의 중심지였다. 대상들이 겨울엔 예멘을 내왕하고, 여름엔 시리아를 내왕하면서 멕카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멕카가 부의 축적지가 되자, 귀족 상인 계급이 생기게 되고, 그들은 자기들의 공동 이익을 보수하기 위하여 의회를 설립하였다. 멕카의 족장으로 공인을 받게된 부족들은 아라비아 전역에 걸쳐 커다란 명성과 영향력을 떨쳤으며, 특히 이스라엘의 후손들인 쿠에이쉬족은 더욱 그러하였다. 원래 멕카에는 도읍이 없었고, 토암계곡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그때 예언자 아브라함은 그의 노예 하갈과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 이스마엘에게 약간의 조야자와 물을 주어 지금의 멕카가 있는 곳에 두고 갔다고 한다. 하갈과 그의 아들은 홀로 떨어져 있게 되고, 물이 떨어지자 "싸파 마루아 구릉"을 일곱 번 오르내리며 물을 찾아 다니는 동안 기적이 일어나서 "잠잠(멎어라, 멎어자)" 샘물이 나타났다고 한다. 신은 예언자 아브라함의 신앙을 세 번 시험하였는데 이 "잠잠성천"의 이야기가 그 하나다. 이기적의 신의를 믿는 이슬람 신도들은 멕카 순례때 "사파 마루아 언덕"을 일곱 번 뛰면서 왕복하고, 잠잠성수를 마시면서 속죄를 빈다. 그러나 예언자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교리는 멕카와 그 주변 부족들에 의하여 한때 지속되어 왔으나, 세월의 흐릅과 외부에서의 영향에 의하여 일신론의 신앙은 점차로 쇠퇴하여 돌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을 섬기는 우상숭배로 바뀌어지게 되었다. 카아바 성전에는 거대한 우상들이 세워져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


절 무함맏 시절의 기독교

무함맏이 보았던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외국의 종교였다. 그가 접축했던 기독교인의 대부분은 아랍인이 아니었고 주변국가에서 온 외국인이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인 박해를 피해 아라비아에 정착한 사람들이 었다. 그들은 아랍인들과 멀리 떨어져 살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언어로 예베를 계속했다. 그러므로 무함마드는 그의 자신의 언어인 아랍어로 된 어떤 성경책도 접해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기독교 교회는 교리적인 분쟁으로 심히 분열되어 있었다. 니케아 회의와 칼케돈 회의 이후로 동방 교회들은 삼위일체 교리와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해 논란을 벌이고 있었다. 칼케돈의 교리들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별도로 하고 일부 또는 대부분 단성론자들은 예수의 신성을 강조함으로써 예수는 완전히 인간이 아니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또 네스토리우스파는 예수가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졌다는 것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은 물체는 악하고 구원은 신비주의적인 계몽을 경험했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성육신을 부인하였고 어떤 이들은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시지 않았다고 믿었다. 기독교는 정치 세력과 식민주의의 팽창과 관련된 종교였다. 비잔틴 황제는 정통신앙에 확고한 지지를 보냄으로써 자연히 여러 이단교파를 맹렬히 박해하였다. 그러므로 많은 아랍인에게 기독교는 비잔틴 통치와 동의어가 되었고 국교와 다른 신앙은 강압적으로 박해받는다는 것과 같았다. 당시에는 로마제국의 핍박을 피해 팔레스타인에서 나온 유대인들이 아라비아 반도의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매우 영향력이 강한 종족들도 있었다. 그들은 올바른 경전을 가지지 못하고 또한 수효도 유대교인들보다는 적었다. 그리고 네스토리안 계통의 기독교인 공동체가 존재했으나 그들은 오늘날처럼 전도에 힘쓰는 교회들이 아니라, 형식화되고 영적 능력과 복음 증거의 열정이 거의 없었다.


무함맏의 등장


무함맏의 유년시절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맏은 쿠레이쉬족으로 서기 570년 아라비아의 멕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일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의 아버지 압둘라는 무함맏이 태어나기 전에 죽었고 어머니는 무함맏이 여섯 살 되던 해에 죽었기 때문에 삼촌 아부 탈리브가 그를 양육했다. 그래서 삼촌을 따라 낙타 몰잇군이되어, 다른 나라를 여행하게 됐는데, 이것이 그의 종교적 사고에 영향을 주었다. 이 유년시적의 영향인지 무함맏의 율법에는 고아들에 대한 그의 동정심이 나타나 있다. (수라 2:21; 218) 그는 부자 하디자의 일을 보아주고 있었는데, 25세가되어서 40세의 과부인 그녀와 결혼을 했다. 하다지와는 그녀가 죽기까지 행복하게 살았다. 메디나에서 마호멧은 여러 부인을 거느렸다.


무함맏의 소명

코란의 첫번째 계시가 그에게 온 것은 약 40세 때이었다고 한다. 한 목소리가 세 번 그에게 "그대의 주(主)의 이름으로 낭독하라......."고 명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상당 기간 동안 아무런 계시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깊은 영적 우울, 불확신의 기간을 지난 후에 갑자기 천사 가브리엘의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카디야에게서 위로를 받고 숨기 위해 떨면서 집으로 갔지만 한 목소리가 "오 망투를 두르고 있는 그대여, 일어나서 외치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아랍의 시인들과 점장이들의 경우와 같 자신이 귀신에 들리지 않았나 두려워했다. 그러나 카디야와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용기를 주었고 그는 그는 곧 점점 더 자주 신의 계시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정통적인 모슬림에게 코란에 있는 모든 구절은, 천사장 가브리엘에 의해서 예언장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코란의 가장 초기 수라(계시)들은 개념의 현저한 단순성을 드러낸다. 거기에는 알라에 의해서 창조된 인간의 도덕적 반응을 촉구하고, 심판의 날을 예언하며, 저주받은 자들의 고통과 처음 보기에는 대단히 감각적인 것 같은 낙원의 즐거움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무함맏의 인격

(한때 유럽에서 널리 퍼졌던) 모하메드가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꾼이었다는 사상은 다행히도 없어졌다. 그리고 최소한, 그의 초기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의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의 초기 계시들을 희망적 관측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즉 그들은 다음과 같이 그에 관해서 묘사한다. 그의 초기 삶의 불행과 좌절, 아랍인들도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처럼 신의 사자와 경전이 필요하다는 그의 깊은 확신, 그를 그들의 예언자로 특징지어 줄 어떤 계시의 혜택을 받고자 하는 그의 갈망 그리고 다양한 내외적 자극이 그의 잡재 의식적인 마음에 불러일으킨 생각들과 이야기들이 이러한 연속되는 계시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그의 확신이 그 설명이다. 그는 때때로 간질 환자, 히스테리 환자, 병리상의 환자, 혹은 계시에 대한 에비온적- 마니교의 상속인으로 간주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따금 대단히 비판적인 견해를 취함으로써 계시의 징후들이 때때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해 왔다.물론 그 현상들은 현대의 교령술무당들이 주장하듯이, 간헐적으로 영에 사로잡힌 증후들로 설명될 수 있다. 코란의 초기 수라들에서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스타카토 스타일은 아러한 가정들 중의 어느 하나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에 그의 선지자적 주장들에 대한 기적적인 증거를 보여 달라는 자연적 요구룰, 이야기들에 대한 그의 지식이 오로지 신의 계시에서 나온 것으로 함으로써 충족시키고자 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은 너무 세밀하게 탈무드와 일치하여 그것들이 본질적으로 유대적인 원천에서 나왔음은 거의 의심할 수가 없다.


그는 다른 신자들과는 다르게 네 명이상의 아내를 소유할 권리를 인정받았고, 그의 시간을 그 여자들 사이에서 균등 분배해야 하는 정상적인 의무로부터 면제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그의 양자의 이혼한 아내와 결혼했을 때 아랍의 관습에 상관없이 비판을 모면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그의 첩 메리와 더 이상 관계를 갖지 않겠다는 맹세로부터 면제되었고, 그럼으로써 그의 몇몇의 아내들 사이에서 야기될 문제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그의 아내들은 베일을 쓰도록 명령받았고 부정한 행위에 대해서는 이중벌을 받는다고 위협받았으며 그의 사후에는 재혼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다른 학자들은 모하메드의 본질적인 진실성에 대해서 깊이 확신하고 있어서, 그가 어떤 의식적인 사기도 하지 않았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것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나이가 좀 든 후에 그는 그가 신의 계시를 받은 자라고 지나치게 확신하고 하나님의 예언자라고 지나치게 믿게 되어, 주위 상황과 그 자신의 성향이 일으킨 합박을 그가 너무 자주 들었다고 믿는 신의 목소리로 진지하게 오해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선적으로 심리학자의 문제이지 역사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다. 그 밖의 점에 대해서 말해 보면, 그의 성격은 많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혼성물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는 신학자라기 보다는 시인이었고 조직적인 사상가라기보다는 뛰어난 즉흥 시인이었다. 그가 취향에 있어서는 주로 단순했고 기질에 있어서는 상냥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그는 관대하고 단호했으며 친절하고 빈틈이 없었다. 또한 그는 날카로운 심판관이었고 타고난 지도자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그는 잔인해지고 깊은 앙심을 품은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수치를 무릅쓰고 암살할 수도 있었으며 관능적인 경향을 띠기도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의 하림(후궁)의 규모는 솔로몬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다윗의 것에 비하면 좀더 나은 것이다. 그의 덕망은 그의 동시대인들의 것보다 뛰어났으며 그의 결점은 거의 시대에 이런저런 비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수많은 참된 개혁들을 도입하기도 했다. 만약 그의 추종자들이 그를 그가 자신에 대해서 내린 평가대로 받아들였다면, 그의 성격에 대한 다른 견해는 대부분 적절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코란은 그의 예언자적 존엄성에 대해서 확실한 용어로 주장하고 있지만, 반면에 그의 소멸성과 불완전성에 대해서 명백하게 어급하고 있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전설들에서 보이는 그의 언행에 대한 반신성화와 양립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언행은 곧 이론상으로는 코란 다음 가는 중요성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에 대한 모하메드의 관점

모하메드는 기독교의 교의에 대해서 대단히 피상적인 그리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완전히 틀린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의 초기 삶에서 그는 유대교인들에게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후기 삶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보다 덜 심한 비난을 받았던 것처럼 보인다. 예수에 대한 코란의 이름인 이사(I'sa)는 메시아이었고 처녀에게서 태어나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 이라고 불리었다. 그는 위대한 기적을 일으키는 자이었고, 가장 위대한 예언자들 중의 하나이었다. 그러나 코란은 명백하게 그의 신성을 부인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고 그가 십자가상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신에 코란은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졌다." (혹은 "그는 그들을 속이기 위해서 위조되었다.")고 말하고, 하나님이 그를 자신(하나님)에게로 끌어올렸다고 말하고 있다. 정통적인 모슬림들은 항상 이것은 실수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예수 대신에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해 오고 있다.


모하메드의 말년

모하메드는 주위 여러부족을 제압하거나 우호관계를 수립하는 한편 유태교도를 메디나로부터 완전 추방한다. 그후 630년 1월 일만 대군을 이끌고 메카에 진격하여 전의를 잃은 쿠라이쉬 부족으로부터 항복을 얻는다. 무혈입성한 이슬람군은 카바신전의 우상과 메카시내의 모든 우상을 파괴하여 이교(異敎)의 시대를 종식시킨다. 아랍의 유력한 쿠라이쉬 부족을 정복한 소문이 퍼지자 많은 부족이 메디나에 사절을 보내 맹약을 맺고 이슬람교를 수용한다.  630년 모하메드는 3만 대군을 인솔하여 타부끄 원정을 감행하기도 했는데 이는 이슬람의 북방정책의 일환으로서, 이슬람교의 위용과시가 목적이었다고 추정된다. 그후 632년 모하메드는 순례를 마치고 수개월후 세상을 뜬다.- 이별의 순례라 한다.-코란에 순례에 대한 규정은 자세히 나오지 않으나 이때의 선례로서 순례양식이 답습되고 있다.


이슬람의 확장


이슬람권의 확대

모하멧은 메카를 성지로 하고, 아랍의 부족들을 칼과 교리로 정복한 후 그는 62세에 죽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죽을 때 후계자르 지명하지 않고 죽었기 때문에 후계자 문제로 회교는 즉시 심각한 내분에 휩싸이게 되었다. 회교는 정치와 종교를 다 관장하는 신정 국가의 정치 형태로 인하여 종교 지도자는 곧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후계자 선정에는 내분과 갈등이 불가피하였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초기 약 28년간은 지도력을 갖춘 아부 바크르, 오말, 오트만, 사위 알라 등에 의하여 잘 유지되었고, 이들은 즉시 회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확산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아부 바크르는 코란을 잡대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회교는 이들 지도자들 이후에도 내분과 갈등 속에서 요원의 불길 처럼 확산하여 동으로는 인도에, 서로는 서구는 폭풍처럼 밀려드는 회교군대에 전율을 느끼다가 투우르 전투에서 찰스 마르텔 대제에 의해 일단 저지를 당한다.


마호멧의 사후, 교단은 신도의 장로들 중에서 교통(敎統)의 후계자인 칼리프를 선출하였다.  그 후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진출을 개시하여 633년에서 644년까지 시리아, 이라크, 북부메소포타이아, 아르메니아, 이란, 이집트 등을 정복하여 여러곳에 기지도시(基地都市)를 건설하였다. 그 후에도 정복사업은 계속되어 우마이야조 시대에는 서쪽은 북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까지, 다시 711년부터는 이베리아 (스페인)반도에 침입, 동쪽은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서부까지 그 지배하에 두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의 중추부까지 진출한 군은 732년 포아티에 북방의 싸움에서 패퇴하였으나, 동방에서는 751년 여름 탈라스강의 싸움에서 중국의 당나라 군을 괴멸시키고 중앙아시아의 지배권을 확보하였다. 아바스조의 초기 100년간은 칼리프정권의 전성기였으나 그 후 이베리아는 우마이야가의 일파에 의하여 독립하고, 이어서 모로코, 튀니스, 중앙아시아, 이란 동부, 이집트 등에도 독립정권이 출현하여 칼리프의 직할지는 점차 축소되었다. 10세기에 들어서자 921년이후 볼가강중류의 불가르족이, 이어서 960년이래 텐산남북로의 투르크족이 다같이 대량으로 이슬람교를 받아 들였다. 그때까지 아랍족, 이어서 이란인이 중심이었던 이슬람 세계는 이 무렵부터 투르크의 패권밑으로 옮겨지는 경향이 생겨, 10세기 말부터는 투르크계가즈나왕조의 마흐무드왕은 자주 인도에 침입하여 이 지방의 이슬람과가 확고한 기반에 놓여졌다. 한편 동아프리카에는 740년 무렵부터 이슬람교가 퍼지기 시작하여 1010년경에는 사하라 사막을 넘어 니제르 강변의 서수단 지방에 있는 흑인왕국에까지 이슬람의 물결이 미쳤다. 1071년 아르메니아의 만지케르트 싸움에서 셀주크, 투르크군은 비찬틴군을 격파하였다. 이때부터 서아시아의 이슬람과, 투르크화가 시작되었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것이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까지 거의 2세기에 걸친 십자군운동이다. 한편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그리스도 교도의 역정복이 진행되어 1493년에는 무어인의 최후의 거점인 그라나다가 함락되어 아침내 이슬람은 북아프리카로 후퇴하게 되었다. 이와는 달리 셀주크조와 교체된 오스만조는 발칸 반도로 진출하여 1453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을 공략 비잔틴제국을 멸망시켰다. 또 인도에 세력을 부식한 이슬람교도는 이 곳을 기지로하여 말레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방면의 포교를 행하여 동남아시아의 이슬람화는 15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광범한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현재의 세력

현재의 이슬람교도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세계 인구의 약 25%인 10억 전후라고 유엔통계조사국에서 밝힌 바 있다. 지역적으로는 북아프리카, 아라비아반도와 이란에 이른 소위 중동지역과 동부소련, 터키, 아프가니스단, 파키스탄서부, 중국, 인도에 이르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기타 한국, 일본 등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예를 들면 남,북미지역과 유럽지역에도 오랜 이슬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수백만의 무슬림들이 있다. 특히 독일과 프랑수 지역에서의 이슬람 문화, 역사, 종교학에 관한 연구는 그 역사도 오래거니와 또한 수준에 있어서도 높다.


  이슬람의 신학


창조주의 개념과 명칭

고등학교 교과서 세계사에서는 이슬람에서 믿는 창조주를 "알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말 대사전에서도 "이슬람교의 유일, 절대, 전능의 신을 「알라」"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알라와 하나님 그리고 여호와의 속성에 관하여 묘사되고 있는 모든 것은 각기 다른 속성으로 표현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주와인간 창조한 창조주로써, 절대자로써 그리고 유일신…이며 시초이자 영원하고 무한히 존재하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사 사랑과 은혜와 자비로 충만하신분…등으로 묘사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서는 각기 다른 신으로 이해 될 수 없다는 논제가 성립된다. 알라나 하나님 그리고 여호와가 유일신 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라 일라하 이라라후 ­즉 알라외에는 어떠한 신도 존재하지 아니한다는 것이 이슬람의 유일신 사상이며,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이 최고 유일신으로 섬기는 신을 여호와라 하였고, 기독교에서 믿는 유일신을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곧 위에 언급한 속성을 가진 신은 하나밖에 없는 유일신이라는 것이다. 각기 서로 다른 신으로 이해되어온 이유가 있다면 사용하는 말과 글이 서로 달랐으며 학문과 교육 그리고 문화의 교류가 개인과 개인, 부족과 부족 나아가서는 국가와 국가간에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라 본다.


무슬림의 신앙


구원관

무슬림의 구원의 조건은 믿음과 선행이다. 무슬림에겐 죄인이 구원받아야 한다는 교리가 없으므로 구세주의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의 대속의 죽음을 부정하고, 속죄의 교리도 부정하고 있다. 알라의 작성된 교리는 속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알라가 태초부터 정한 사람의 운명은 변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꾸란에서 구원이라는 의미로 쓰여진 단어는 낙원(수라 76:12, 79:40, 3:15, 3:185), 안전한 장소(수라 78:31)등이 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현세에서 선한일을 행한 사람을 위미하는데, 꾸란에서 정하는 여러 가지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있다(수라 2:112, 3:148,76:13). 알라를 두려워하는 자, 공경하는자, 알라의 마음에 드는자 즉, 알라의 법을 순종할 때 알아의 뜻에 의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구원관은 매우 상반된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예수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반면 이슬람교는 어느 정도까지 선행을 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 불확실하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슬람교의 교리의 입장에서는 신앙의 의미가 왜곡되어 있다. 그저 최종적인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사는 것이 알라의 뜻으로 간주되어 숙명론적인 삶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다.


신관

무슬림은 하나님이 모순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능력이 무한하다고 가르친다. 오늘날 이슬람교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하나님의 이름 중 하나는 '전능자'이다. 아잔(기도시간)이 되면은 일제히 "알라 아크바르, 알라 아크바르"를 방송으로 외치는데 이 뜻은 '신(神) 중에 더 큰 신' 이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모스크로 모이라는 것이며 오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각자의 처소에서 쌀라(기도)를 요구한다. 이슬람은 알라가 무소부재하고 인간에게 가까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하나님의 영이 인간 안에 머문다는 개념은 갖고 있지 않다. 신은 선과 악 모두의 원천이다. 그의 뜻은 그것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어떤 법이나 원칙들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는 최상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가 뜻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그가 뜻하는 사람들을 벌을 준다. 무슬림들은 우리가 알고있는 뜻과는 다른 의미로 거룩이란 말을 사용한다. 그에게 거룩이란 완전함을 의미하지만 도덕적인 완전함은 결여되어 있다. 무슬림에게는 영원히 공의로운 원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에서 알라가 명령한 것은 옳은 것이고 금지시킨 것은 불 의한 것이다. 더구나 한때 알라가 명령한 것이 다시 금지될 수도 있다. 천사들에 대한 믿음은 무슬림에게 절대적으로 명령된 것이다. 그들을 부정하는 사람은 이단자이다. 가브리엘, 미카엘, 이즈라일, 이스라필과 수많은 보통 천사들을 인정한다. 두명의 기록하는 천사들이 인간들을 따라 다닌다. 인간의 오른쪽에 있는 천사들이 인간들을 따라 다닌다. 인간의 오른쪽에 있는 천사는 선행을, 왼쪽에 있는 천사는 그의 죄들을 기록한다. 무덤에 새로 매장된 모든 시체를 방문하는 문카르와 나키르라 불리는 두 천사가 있다. 이 천사들은 시체를 일으켜 세우고 그의 신앙을 심문한다. 만약 그 대답이 만족스럽다면 그가 평화롭게 잠들도록 해주고 만약 그가 심경을 고백하지 않으면 부활의 날까지 그를 심하게 때린다. 천사들과 인간들 사이에 또한 영마라고 불리는 수많은 피조물이 있다. 이들은 신앙과 불 신앙 둘 다를 가질 수 있다. 선한 영마들은 무슬림의 모든 종교적 의무들을 행한다. 불 신앙의 영마들 - 아파리트, 샤아틴- 은 예수가 탄생했을 때 마지막 네 하늘로부터 쫓겨난 자들이다. 영마는 자주 동물, 파충류 등이나 혹은 인간의 형태로 나타난다. 인간은 그들 중에 하나에 의해서 붙들리게 될 것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특별히 자르 의식의 향, 춤, 제사에 의한 귀신 물리기에 있다. 예언자들은 약 104개의 성스러운 책들을 가져왔다. 그중 100권은 사라져 버렸고 네권의 주요한 경전 가운데 율법은 모세에게, 시편은 다윗에게, 복음은 예수에게 그리고 코란은 모하메드에게 내려 보내졌다. 이들은 유대인들이 성경을 개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활과 심판은 무슬림 사상에서 두드러진 것이다. 날짜와 시간은 모두에게 비밀이지만 그것의 도래에 대한 25개 징조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모든 사람들이 들리어 올려질 것이고 기록하는 천사들이 가지고 있는 책들이 펴질 것이며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이 모든 인간의 행동들을 저울에 달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낙원으로 들어가도록 허락 받고 거기에서 후리스 즉 낙원의 처녀들이 그들에게 주는 여러 잔의 포도주를 들이키면서 부드러운 소파에 기대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 남자는 그가 하고 싶은 만큼 많은 낙원의 처녀들과 결혼할 수 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지옥의 고통으로 인도될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불 속으로 일시에 들어가지만 참된 무슬림이 아닌 사람만 남게 된다. 다른 전설들은 신앙이 없는 자들의 발은 거기로부터 미끄러져 불 속으로 떨어질 것이고 무슬림들의 발은 힘있게 지탱할 것이다. 


원죄

원죄라는 것을 부정한다. 이슬람교의 권위자의 설에 의하며, 죄라는 것은 사리판단을 할 수 있는 연령에 도달한 자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법률에 위반하는 의식적인 행위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부지로 인한 지는 유죄라고 볼 수 없다. 죄는 어디까지나 외부적인 행동에 의하여서만 구성되며, 내면적인 성향의 문제는 아니다. 이슬람의 전통에서는, 표면적인 법률의 준수에 가장 중점이 주어져 있고, 내면적인 순수성, 마음의 신성성은 그리 문제로 삼지 않는다.


이슬람신앙의 요소

이슬람 신앙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음의 셋으로 분석된다. 첫째는 '지(知)'로 이것은 알라의 계시를 잘 이해함을 말한다. 둘때는 '언(言)'으로, 마음에서 알고 또한 믿는 바를 말로 표현하는 일이다. 셋째는 '행(行)'이며 이슬람교도로서의 의무를 열심히 실행하는 일이다.


이슬람의 6신(六信)

이슬람의 근본은 믿음과 실천으로 믿음은 다시 6가지 믿으로 구성되어 있어 6신(六信) 또는 믿음의 기본 6가지라 하고 실천은 다시 5가지로 5주(五柱) 또는 이슬람의 기본 5가지라 한다.


창조주에 대한 믿음

창조주 존재에 대한 완전한 믿음이 결여될 때 창조주에 대한 인간의 순종과 복종이 결여되거나 방종하게 된다. 또한 창조주의 속성에 대한 완전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결어 될 때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미덕과 겸손과 순결, 사랑과 윤리와 도덕이 타락하게 된다. 또 밤과 낮을 보고, 하늘과 대지와 우주를 보고 그리고 그 우주가 질서있게 운행되고 있는 우주 운행 규칙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창조주의 존재를 믿되 유일신, 즉 창조주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이다. "라일라하 일랄라" 알라외에는 어떠한 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이 창조주는 알라인 것이다. 


천사들에 대한 믿음

인간이 한줌의 흙에서 창조되었듯이 천사는 빛으로부터 창조된 가장 고귀한 피조물 중의 하나로 창조주의 명령에 순종한고 복종 할 뿐 거역할 줄 모르는 속성을 부여받았다. 또한 여러 가지 임무도 부여받았다. 양식을 주관하는 임무, 풍우를 주관하는 임무, 선과 악을 주관하는 임무, 천국과 지옥을 담당하고 심판의 날과 부활의 날을 담당하는 임무 등 인간이 다 알수 없는 임무들이다. 이들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 할 뿐 거역하거나 한치도 그 명령에서 이탈하거나 어떤 것도 제시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왕국을 관리하기 위해 선택된 것들이기에 이들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정확히 그리고 빈틈없이 수행하며 제 능력에 의하여 행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또한 인간과 하나님과의 중재적 역할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천사들을 숭배하고 찬사들에게 구원을 하는 것을 가장 바보스런 존재다. 왜냐하면 인간을 창조하던 첫째날에 하나님은 천사들로 하여금 아담에게 허리 구부려 인사를 하도록 하였으며 또한 아담에게 천사들 보다 더 많은 지식과 지혜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담에게는 지상을 관리하는 대리권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위채 아래에 있는 천사들을 인간이 신의 자격을 부여하여 숭배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으로 죄악인 것이다.


성서들에 대한 믿음

이슬람에서 말하는 성서는 하나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일부 예언자 및 선지자들에게 계시된 말씀이 기록된 책들을 가르킨다. 이 책들은 4권으로 아브라함에게 계시되었던 수흐프, 모세에게 계시되었던 타우라, 다윗에게 계시되었던 자부-르, 예수에게 계시되었던 인질 그리고 무함맏에게 계시되었던 꾸란란이 있으며 그 밖의 예언자들에게 계시된 것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슬람에서 말하는 성서들에 대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4권의 성서를 믿는 것을 말한다. 이 성서들은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들을 통하여 인간을 위한 복음서로써 그리고 지침으로써 보내어진 하나님의 말씀 이므로 선별해서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게 된다는 논제가 성립되면서 그 인간은 카-피르라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가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와 천사들의 존재를 믿는다면 수흐프나 타우라, 자부-르, 인질 그리고 꾸란 모든 성서를 선별함이 없이 완전히 믿어야 한다는 것이 이슬람의 세 번째 근본이 된다.


선지자들에 대한 믿음

이슬람에서 정의 하는 선지자 및 예언자에 대한 개념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인류에게 설명하고 해석하는 임무만 받은 인간을 나리라하고 이 나비는 아담을 비롯하여 노아, 후드, 살레, 아브라함, 이스마엘, 이삭, 야곱, 요셉, 아이읍, 슈와이브, 모세, 아론, 롯, 요나, 엘리샤, 줄키플리, 대비드, 솔로몬, 엘리샤, 자카리야, 존, 예수그리고 무함맏을 최후의 예언자로 각 시대 각 민족에게 보내어진 예언자의 숫자는 약 124,000명으로 전하여지고 있으며 이름이 밝혀진 나비는 꾸란에서 25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활(내세)에 대한 믿음

인간의 생은 현세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후도 생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현세의 생명이 유한적 생명이라면 사후의 생명은 영원하며 이 생명은 창조주의 심판을 통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생명과 지역에서 영원히 사는 생명이라고 믿는 것이 이스람의 다섯 번째 근본이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께서 소멸할 어느 날이 야우물 끼야마 즉 심판의 날이며 이날 창조주는 모든 피조물을 그 분 앞에 모이게 하니 이날은 하샤르 즉 죽은자들이 다시 살아 모이는 날로 야우물 바흐쓰 즉 부활의 날이라 하며 살아난 인간들은 모두가 창조주 법정에 서계 되니 이때 인간이 현세에서 행하였던 선악이 증감되지 아니하고 그대로 제시되매 창조주는 인간이 실천한 선과 악의 결과를 비유하시니 선행이 많은자에게는 관용이 베풀어 질 것이요, 악행이 많은 자에게는 그에 대한 벌이 있을 것이며 용서를 맏는 자는 곧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요, 벌을 맏는 자는 지옥으로 들어간다는 것으로 모든 예언자 및 선지자들이 제시했듯이 무함맏 선지자도 인류에 제시하고 있다.


정명에 대한 믿음

인간의 현세생활을 영위하고 구정하며 제한하는 창조주의 법칙에 대한 완전한 순종과 어떤 특정한 기간에 특정한 방법에 의하여 어떤 물체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것이다. 즉 모든 무슬림은 알라의 절대적인 명령 그리고 성과 악에 대한 명령을 믿어야 한다. 창조주가 기록하여 두지 아니했던 것은 인간에게 절대 발생하지 아니함으로 창조주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의지하라는 것이다. 이 정명즉 까다르는 원래 '역량','용량'의 뜻이지만 '한계, 한도, 제한'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곧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알라의 뜻과 섭리에 의하지 않고서는 나무에서 나뭇잎 하나 떨어질 수 없다.


꾸  란

무함맏이 살아 있을 때에는 아무도 그가 한 말들을 기록해 두려하지 않았으며, 그에 관한 어떤 기록도 찾아볼 수 가 없었다. 그러나 추종자들이 그가 죽은 후 그의 말을 기억해 냈다. 무슬림들은 그들이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살아있는 도서실"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무함맏에 관한 모든 것을 문서화하려고 노력했다. 칼리프 오스만이 이 작없을 감독하였고, 그가 이 일을 완성시켰을 때 신약성경보다 조금 더 많은 총 114장 6,236절로된 꾸란이 만들어졌다. 무스림들은 꾸란의 말씀을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기록되었던 것이며 한절 한절이 가브리엘 천사가 무함맏에게 계시한 정확 무오한 말씀이라고 믿는다. 이슬람교 역사의 초기부터 무슬림들은 그 성구들을 암송해 왔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하피즈(암기자)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 꾸란을 암송하는 일에 전적으로 매들려 왔다. 꾸란은 아랍어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정통 무슬림은 아랍어로 기록된 것만을 권위있는 것으로 인정한다. 그들은 아랍어가 적어도 70가지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꾸란은 실제 의미대로 정확하게 번역할 수 없다고


꾸란의 예수

꾸란에서 예수는 부활의 날에 증인이 된다고 말하고 맹인과 문둥병자를 고치고 죽은자를 살리며, 그의 본성은 아담과 같고, 예수는 심판의 날을 아는 수단이 된다. 예수는 알라가 아니고 사자일 뿐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예수는 하나님이 보낸 여러 선지자 계보 중의 한 분이다.

2.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태아났고, 그의 탄생을 천사가 마리아에게 고지하였다.

3. 그는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

4. 예수는 하나님의 위치로 올리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5. 예수는 어느 면에서도 신이 아니고 그는 하나님의 예언자들 사이에서 유일무이하시다. 그에게 '말씀'과 '영'이라는 칭호를 주셨고 이는 다른 인간에게도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6. 예수는 아담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이 둘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7. 예수는 십자가에 죽지 않았다. 이슬람은 그리스도가 죽었다는 것을 거부한다.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코란의 모순점

그들은 조상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성품, 육체의 부활, 천국과 지옥 등은 성서의 교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전혀 상반되는 몇가지가 있다.

1.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한다. 다른 선지자와 동등한 선지자로 본다. 예수는 마호멧보다 훨씬 하위이다(슈라서 4:171, 예수는 알라신의 사자에 불과하며).

2.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부인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알라신이 그를 천국으로 데려갔다고 믿는다. 대신 가롯유다가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한다.(슈라서 4:157, 예수를 죽이지도 못박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에게 그처럼 보였을 뿐이다)

3. 각 사람은 자기 죄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5가지 믿음의 표준을 지킴으로 죄에서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무엇인가? 마호멧은 죽은 예언자요, 그리스도 예수는 살아계신 구세주라는 점이다.


회교의 교리

회교의 중요한 교리는 소위 신앙의 다섯 기둥으로 요약된다.

첫째 기둥은 신앙고백이다. 우주에서 유일하고 참된 신이 있는데 그는 알라신다. 이들 무슬림이 되기 위해서는 '샤하다'즉 "야일라하 일라 알라…-알라 이외에는 다른 신이 없으며 알라의 예언자는 모하맏이다."라는 고백을 해야한다.

둘째 기둥은 기도이다. 회교도들은 매일 5번씩(동틀력, 정오, 이른 오후(3시), 해질녘, 어두워진 후) 정해진 시간에 메카를 향하여 기도하는 것을 대단히 중요시한다. 나라에 따라서는 그 시간에 기도하지 않을 때 종교 경찰이 매를 들고 채찍을 가하기도 한다. 기도는 혼자서 할 수도 있고 혹은 모여서 기도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아라비아어로 하여야 한다. 그러나 간단한 기도문을 외우는 형식이며 자세는 유대식으로 무릎을 끓는 자세, 선 자세, 엎드린 자세등이다. 이들 기도는 신과의 영적 교제나 청원이나 감사보다는 알라 신의 주권을 인정하도록 하는 의식적 차원이 강하다.

셋째 기둥은 구제와 봉사이다. 회교 역시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배운 대로 구제를 강조하는데, 그것은 또한 모함맏 자신이 가난하게 자랐기 때문에 구제를 강조하게 된 것으로 본다. 이들은 '자카트(자신의 총수입 가운데 1/40)'라고 부르는 자유헌금인 '사다카'와 구별된다.

넷째 기둥은 금식이다. 회교 월력 9월은 라마단이라고 하나 아라비아어로는 라마잔으로 "태운다"는 의미이다. 가장 성스러운 절기가 바로 이때이다. 금식은 자기 절제와 신에 대한 헌신을 의미한다.

다섯째 기둥은 순례이다. 회교는 가난하거나 늙거나 허약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은 평생 한 번 멕카를 순례 하도록 되어 있다. 순례는 구원을 위하여는 필수적인 의식이어서, 늙고 허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대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라마단

이슬람력의 라마단 달(제9월)은 이슬람 교도가 지켜야 할 5행 중의 하나인 단식을 행하는 달이다. 29-30일 간 해가 떠서 질 때까지는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된다(믈도 마셔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일몰 후에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상관없으므로 하루종일 주렸던 배를 가득 채우게 된다. 실제로 이 한달 동안의 식료품 소비량은 평상시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특히 설탕과 밀가루의 소비량은 몇 배나 된다고 한다. 일몰 후에 식사가 끝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웃을 방문하여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흥겹게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해가 뜨기 전에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잠시 눈을 붙인 후에 직장으로 향한다. 이러한 생활이 한달 동안이나 지속되므로 만성적인 수면 부족과 소화 불량 등으로 회사나 관청의 업무 효율은 급격히 떨어지고 만다. 이 기간 때에는 오전 중에는 차가 별로 없지만 오후 2-4시 사이에는 교통체증이 심하다. 집에 빨리 돌아가려는 사람들과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기사들과의 한바탕 전쟁이 벌어지는데 교통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오후 5시가 가까워오면 사람들은 집에 돌아가려고 버스와 미니마이크로 버스, 택시, 지하철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로 붐벼 평상시에 2-3배는 된다. 상점들과 시장은 문을 닫고 짐을 정리하여서 집으로 돌아가서 식사를 하고 다시 나온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영업을 계속한다. 특히 외국인은 이 기간 때에 자칫 식사를 거르기도 하는데 AUC근처에 패스트푸드점이 여러 개 있는데 그곳은 문을 평상시처럼 연다. 그래서 식사는 해결이 되고 기독교인의 식당은 문을 열기 때문에 잘만 찾으면 문제 없다. 오후5:20쯤이 되면 마을마다 유지들이나 부자들이 가난한 주민을 위해 무료 음식을 제공한다. 거리 어디에서건 탁자가 놓여져 있는 곳이라면 기다렸다가 먹고 갈수도 있다. 1시간전부터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시계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각지각색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일몰을 알리는 대포소리가 들리고 일몰을 권하는 아잔(azan:이슬람교에서 예배 시각을 알리는 것)의 목소리가 거리 곳곳의 모스크로부터 들려온다. 그러면 모두 기도를 하는둥 마는둥하고 일제히 식탁으로 달려들어 하루종일 허기진 배를 채우기 시작한다. 이때만큼은 거리 전체가 죽은 듯이 조용해지며, 카이로의 온갖 기능이 정지되고 만다. 아무때나 '인샤알라'라고 외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라마단 기간 중에는 무슨 일에도 '부크라(내일이여 오라), 부크라'라고 소리친다. 라마단이 끝나면 이드 엘 피트르이라고 하는 단식이 끝났음을 축하하는 축제가 3일간 계속된다. 특별한 의식은 없으나 평상시에 자주 만나지 못하던 친척을 찾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종교적인 의미는 전혀 다르지만 우리 나라의 추석처럼 사람들이 도시를 벗어나 고향을 찾는 기간이다. 이때가 되면 카이로와 같은 대도시는 거리가 텅텅 빈다. 또 하난의 커다란 축제는 '이드 엘 아다하'라고 불리는 희생제이다. 메카 순례의 최종일인 이슬람력 제12월 10일에 순례가 무사히 끝난 것에 대하여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의미로 양이나 낙타를 잡는 의식이다. 순례자뿐만 아니라 고향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양을 잡아서 주위 사람들과 함께 먹거나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준다. 주변에 있는 모슬렘 국가에서 라마단 기간 동안에 이집트로 오는 회교도들이 많이 있다. 그 이유는 자국에서는 엄격하게 라마단을 지키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 오는 것인데 실제로 형식적으로 라마단을 지키면서도 그들에게 라마단이 어떠냐? 금식은 괜찮냐? 라고 물으면 '함드릴라(thank God)'을 외친다.


이슬람법의 성립

무하마드의 후계자들은 그의 사후 25년 이내에 탄생된 광대한 이슬람 제국의 통치를 위하여 이슬람법의 제정을 해야만 했다. 그 때문에 예언자의 의도하는 바를 더욱 깊이 파악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을 무하마드의 친척, 친구, 초기의 지지자들의 회상록에서 찾아냈다. 이 회상을 '허디스'(전승)라고 불렀는데, 예언자가 이야기한 것과 행한 것의 두 종류로 분류된다. 그리고 그 두 가지는 '슨나'(예언자가 걸러온 길)라 하여 하나로 모아졌다. 예언자의 언행은 코란의 계시와는 달리 이슬람교도의 경건한 생활규범으로 간주되었다. 허디스는 그의 사후 약 50년 후에 기록되기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예언자의 언동이 모아지면서부터는 다분히 의도적인 창작도 생겨났다. 따라서 여러 가지가 가미되면서, 예언자의 인물 자체 이상으로 과장되어 버렸다. 이에 대해서 9세기에는 「학식을 가진 자는 전승을 창작해서 허위를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참다운 문제를 피하는 방법으로서 창작을 하고 있다」고 하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슬람의 법

일반인 이슬람교도를 다스리니는 이슬람법에는 우리들에게 있어서의 형법, 상법, 민법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고 그 위에 개인의 생활 양식과 도덕 의식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범위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규정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볼 때는 마치 꽁꽁 얽어매는 규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들은 법을 존중하는 범위에서 해석과 응용에 상당한 융통성을 지니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대부분 태어날 때부터 양친의 종교를 따른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는 종교 교육 시간이 있으며(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는 다른 수업을 받는다). 신분 증명서에도 종교를 기재하는 난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란 내면의 신앙인 동시에 일상 생활 및 습관등의 사회적 행동 전체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집트의 이슬람 교도에게는 일생에 걸쳐서 통과해야 하는 몇 가지 의식이 있다. 태어나서 7일째 되는 날에는 산파나 이웃의 여성이 중심이 되어 행하는 명명식(命名式)이 있다. 방 안에 향을 피우고 바구니 같은 것에 아기를 넣어서 향로 위에서 흔들고 아기 엄마가 향로 위로 넘어간다. 다음에는 금속제 망치와 사발(평상시에는 후추나 마늘등을 으깰 때 사용한다)을 두드린다. 이것은 어린 아이가 커다란 소리에 놀라면 성적으로 불능이 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태어난 직후에 미리 소음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한 의식을 거쳐 성장한 남자아이는 표피 일부를 자르는 할례를 받는다. 여자아이에게도 할례(음핵 삭제 등)를 하는 지방이 많으나 도시의 고학력 부모 중에는 여아의 할례를 기피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 상(上) 이집트에서는 나중에 봉합이 필요할 정도로 크게 삭제하는 지역도 있다. 이슬람법에 의한 결혼은 계약을 주고받음으로써 성립된다. 먼저 남성이 법으로 정해진 결혼 자금(마후루)을 준비하여 상대방 가족에게 건네준다. 다음으로 신랑과 신부(대부분 아버지나 아저씨가 대리인이 된다)가 결혼 계약서에 싸인을 하는 과정을 거쳐서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최근 결혼 자금의 시세가 급등하여 보통 샐러리맨 연봉의 몇 배나 된다. 그로인해 중류층 이하의 청년들은 대부분 사우디 아라비아 등의 산유국으로 건너가 돈을 모으고자 한다. 그러나 비자 취득 문제도 있으며 설사 건너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국의 혹독한 환경속에서 수년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모슬렘의 결혼이라고 하면 흔히들 1명의 남성이 4명의 아내까지 거느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혼 자금을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부자나 나이가 들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아주 드문 일이다. 오늘날의 우리 젊은이들의 대다수는 연애를 기초로 하여 결혼을 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의 경우에는 결혼이란 자손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여러 명의 아내를 둔다는 것에는 우리들이 상상하기 쉬운 '쾌락' 추구의 측면뿐만 아니라 자식을 많이 얻고 아내들에게 가사일을 분담시킨다는 의미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장례식은 모스크에서 장례 특별 예배를 드린 후에 이웃 사람과 친지들이 함께 모여 무덤까지 따라가 흙으로 덮는다. 사후 3일 동안 유족들은 집에서 조문객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기간에는 전문가를 고용하여 코란을 읽게 하는데 ,그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집에서는 코란 테이프로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이슬람인의 삶


교도의 일상생활

이슬람세계는 많은 이민족을 포함하고 있어 그들은 각각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사회의 요소는 지극히 복잡하고 또한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대한 지역에 분포하는 수많은 무슬림은 하나의 형으로 통일되어 공통의 생활방식은 취하고 있다. 그것은 샤리아 (이슬람법)로써 공통되어 있기 때문이며 사리아는 코란과 하디스에 입각하여 제정된 이슬람법이다. 무릇, 무슬림된 자는 출생에서 사망까지 샤리아에 따라 생활할 것이 요구된다. 인간의 행위는 5가지로 크게 나누어진다.


1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을 하면 보상되고 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

2 가상(可賞)할 행위로 이것을 행하면 보상받으나 행하지 않아도 벌받지 않는다.

3 허용된 행위로 이것을 행하여도 보상받지 못하고 벌도 받지 않는다.

4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이것을 행하여도 벌을 받지 않으나 그래도 행하지 않는 편이 좋은 것

5 금지된 것으로 이것을 행하면 알라의 벌을 받는다. (하람) 예를 들어 돼지고기를 먹거나 음주하거나 하는 일은 하람이다. 그러나 후자에 대하여는 시대에 따라 또는 지방에 따라 의견의 차이가 있어 약간은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


중세이래 모스크는 교도의 생활중심이 되어 있었으나 11세기 투르크가 각지에서 지배권을 장악한 후로부터는 오로지 예배의 장소가 되었고, 그 밖의 기능은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스크를 생활의 중심으로 삼고, 한편으로는 샤리아에 의하여 규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이슬람교도의 일상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 사회의 규범

우리는 여기서 이슬람의 기본적 개념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이슬람은 한결 뛰어난 「법의 종교」라고 하겠는데, 코란과 허디스, 또는 슨나에 곁들여 '이쥬마'와 '캬스'도 이스라엘 사법의 근원을 이루는 것이다. 캬스는 과거에 있었던 사례 중에서 새로운 사상과 똑같은 케이스를 비교하는 연역적 유추법이다. 그리고 이쥬마는 그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사고방식이다. 이 말의 뜻은 미슬람 공동체=운마 전체의 합의라는 것인데, 이 원칙을 통한 이슬람식 통치는, 매우 민주주의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민중의 의식 속에 법률을 받아들이기 쉽게 함과 동시에 국가 관리의 기능으로서도 효과가 있다.


이쥬마의 사례로서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를 소개해 보겠다.

어떤 종교가가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마땅히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강력히 그에 반대했다. 종교가의 그런 주의주장은 공동체의 합의를 얻지 못하게 되고 그는 결국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인정해야만 했다. 무하마드가 그의 아내 하디자와 함께 시작한 이슬람 공동체의 건설에서 그는 상식과 올바른 마음에 터잡은 확고한 신앙을 쌓았다. 그의 가장 유명한 말의 하나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나의 공동체는 나쁜 짓에는 합의하지 않는다.」이슬람 공동체는 다수 의견에 의해서 운영되는 국가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그 점으로는 그리스도교의 역할과는 크게 다른 점이 있고, 또 그것은 아주 중요한 점이다. 이슬람의 교의를 배운 자, 라는 것은 동시에 이슬람법을 배운 자임을 뜻하는 것인데 그런 학자를 '우라마'라고 부른다. 그들 종교적 법률가는 순수한 종교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공동체의 책임자이기도 한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들의 공적 입장으로 보아 우라마(가장 정확한 번역을 하자면 「종교인」이라는 뜻이 된다)는 목사나 승려에 가까운 존재이다. '이마무'는 단순히 모스크에서 예배를 지도하는 「도사」인데 그것은 집단예배에서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꼭 우라마가 해야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칼리파 아루라시둠'(진실을 인도하는 칼리프)이라는 전승에 터잡은 관습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 '칼리프'라는 것은 무하마드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초대에서 제4대까지의 칼리프, 즉 초대 아브 바크르, 제2대 오마르, 제3대 오스만, 제4대 알리를 가리킨다. 이들 4명이 통치하던 기간은 632년에서 661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이 기간은 이슬람의 황금시대로서 각종 고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4명 중 2명은 암살 당하고 1명은 자택에서 코란을 읽던 중에 참살 당했다. 이슬람과 아랍 세계를 지금까지도 혼미 속에 빠뜨리고 있는 종파의 분열이 이 시대부터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대를 「황금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이슬람교가 서쪽으로는 모로코에서 동쪽으로는 인도까지 그들 세력을 확대하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불운한 사람들이긴 했지만 영예로웠던 4명의 칼리프의 언동이 전승으로서 이슬람법의 집대성에 첨가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슬람법의 성문화는 767년에서 855년 사이에 활약한 4명의 법학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때 두 개의 큰 학파가 그들 손에서 탄생했는데, 하나는 터키, 중앙아시아, 인도에서 발생된 혁신적인 '하나피' 학파이고 또 하나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생겨난 전통적인 '한바리' 학파이다. '샤리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슬람법의 골격은 9세기 무렵까지 이루어졌는데 그에 의하면 코란은 신성하고 변할 수 없는 성전이라 하였고, 예언자의 언행에 터잡은 허디스(공인된 전승)는 성전은 아니지만 변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초기 4대의 「정통 칼리프」(제4대까지는 이슬람 세계가 통일되어 있었지만, 제5대 째를 둘러싸고 무아우이아=우마이아조의 창설자를 지지하는 '수니파'와 알리의 일족을 옹립하는 '시아파'로 분열되어 피투성이가 되는 투쟁을 벌였다)의 전승은 비록 신성하다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존중해야 할 것으로 되어있다. 어떤 법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명기되어 있다-「이쥬티하드의 문은 닫혔다」. '이쥬티하드'란 「독자적 판단」이라는 말인데 그것이 닫혔다는 것은, 모든 판단을 과거의 전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으로 볼 때 '샤리아'는 서구에서 생긴 근대적인 법체계와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그것은 「법」이라기보다는「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의 감정과 반응

아랍사회는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은 원칙적으로 가족의 일부이고, 그 속에서 명확한 의미를 짊어지고, 일정한 권리를 부여받고 있다. 이와 같은 권리․의무는 신성하고 절대적인 것으로서, 가족에의 헌신은 도덕 및 종교상의 원리로까지 되어 있다. 상호 의존은 성실․헌신․충성, 이것은 특히 유사시에는 모든 희생을 다하여 지켜야 할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무료봉사는 <대여>로 생각되고 <무료원조>는 비록 증인이 없더라도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원하는 엄밀한 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여긴다. 즉 즉시 나와 나좀 도와 달라. 언젠가는 나도 당신에게 그와 똑같은 도움을 줄 테니라는 분모가 성립하게 한다. 남에게 봉사를 받은 것은 결코 공건이 아니고 그 신세를 갚는다는 의미로서의 동등한 봉사가 됴구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친절을 베푼 사람은, 상대방이 그 친절을 잊어 버리지 않고 어느 땐가는 같은 친절을 베풀어 줄 것을 기대한다.


아랍인은 자기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하여 어느 때든 무엇인가를 기원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대의에 대한 열의와 타인을 지키기 위한 열정을 가진다. 그들은 그룹 내부의 간섭1과 요청에 둘러싸여 있어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 위한 자기 혼자만의 시간은 전혀 없는 형편이다. 아랍인은 자기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서로 알 수 있는 긴밀한 조직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아랍인은 개인적인 일을 곧잘 질문한다. 그들은 미리 예고하지 않고 자기들이 내키는 시간에 멋대로 찾아오ㅓㅏ서는 장시간 머무른다. 더구나 방문자는 상재방의 집안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침실․부엌과 같은 사생활 구역에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다.

여론은 개인의 행동을 직접, 그리고 궁극적으로 컨트롤하는 힘이 되어 있고 자기 행동을 결정하기 위한 선택의 여지는 개인에게 극히 작은 권한밖에 주어져 있지 않다. 개인의 행동은 사회적 압력에 의하여 끊임없이 감시받고 있기 때문에 양심이 의박하여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거짓말은 아랍인 사이에서 널리 볼 수 있는 습성으로서, 진실에 대한 그들의 개념은 낫다. 거짓말은 그자체가 악이 아니고, 거짓말을 한 상대에게 해로운 결과를 주었을 때문 악이 된다. 또한 아랍인들은 무엇이든 숨기려 든다. 자기 행위를 밝히려고 하지 않는 것은 그 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이 내려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인데, 수치스러운 일을 한 자는 그 행위를 숨겨두어라 불명예스러운 일이 하나 알려지면 또 다른 불명예를 낳는다고 말하여진다.

아랍인은 비판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언제든 타인을 비판하고 자기 비판은 극히 드물다. 따라서 아랍인은 자기 또는 국가적인 불운에 대하여 그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일체의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려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성을 냈을 때의 아랍인은 남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자기가 우위에 서 있을 때, 그리고 서려고 할 때, 아랍인은 대개 남을 몰아세운다. 그래도 상대는 참아주고, 주위 사람들로 반미치광이 같이 날뛰는 성미를 참아 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사회에서는 은어와 욕살이 흔한 일이다. 사막의 싸움은 혀끝에서 시작된다는 속담이 이를 잘설명해 주고 있다.

아랍인은 언제나 자기를 주위 사람들과 결부시키고자 하는 외향적인 인간인데, 그러면서도 내면의 자기를 소중히 하고 속에 몰래 감추어 둔 것은 남에게 말하기를 꺼린다. 아랍인은 자기의 사생활이 남에게 알리면 구설수에 말려들지나 않을까 두려워한다. 아랍인은 역경에는 착실성과 위대한 인내력을 보이며, 특히 자기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사태에 부딪혔을때는 놀라운 참을성을 발휘한다.

아랍인은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고, 농담을 잘 안하며, 흔히 놀이 분위기를 심각한 논쟁의 장소로 바꾸어 버린다. 그결과 농담과 욕설이 뒤섞이게 된다.

아랍에서는 성적 행동에 대한 규정이 극히 엄격하고 금욕적이다. 그래서인지 아랍 남성은 호젓한 곳에서 여성과 단둘이 되면 무조건 그녀에게 접근하려 한다. 남성의 가치기준 속에 정절의 의식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이 쉽게 일어난다. 또한 아랍인의 태도에 보이는 재미있는 형상은 공중의 면전에서는 남성은 내정을 거꾸로 표헌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밉게 보아야 한다는 아랍인의 태도는 그녀에게 심한 말을 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라는 속담에 요약되어 있다.


아랍인은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자기 스스로를 놓이고 남으로부터 존경받는 것을 대단히 중시한다. 따라서 식사에 권유를 금방식사하고 온 듯이 거절한다. 이들은 동정을 받으면 자기가 경멸당한 것처럼 생각한다.

아랍인은 그 종교․습관․전통․생활방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랍인은 자기들의 전통과 습관을 존중하여 주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자기들의 생활을 이해하여 주는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상대의 체면을 세워 주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자부심을 지켜주면 우정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아랍인은 누구나 수많은 예의범절을 지키도록 의무화되어 있다. 예의바름 속에는, 확실히 개인보다도 사회 전체나 집단이 우선한다는 면이 보인다. 그것은 그들의 종교, 전통적인 규범, 친족 사이의관습에서 비롯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습관으로서의 예의바름은 외부적인 두가지 권위, 즉 종교와 부모를 존경하는 두가지 점을 설명하면 충분할 것이다. 예의바름은 주로 종교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의 이름으로 정한 예의바름은 명시된 것, 암시적인 것을 포함하여 무수히 많다. 아랍인은 부모에 대한 복종을 신성한 의무로 생각하고 불복종은 종교상의 죄로 보고 있다.

아랍에서는 친척․이웃끼리 종종 서로 방문한다. 그것은 취미 오락까지도 되어 있다. 이들은 자택뿐아니라 사무실이나 상점에도 낮에는 어느 때나 예고없이 자유로이 방문할 수 있다. 이렇게 임의 방문외에 새로 부임하였거나 여행에서 돌아왔거나, 병이 걸린 경우, 혼인, 사망, 제사 등에는 의무적으로 방문하여야 한다. 의무적 방분을 하지 않으며 가혹한 비판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손님을 맞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아무리 그럴 듯한 이유가 있다손치더라도 과격한 비난의 원인이 된다. 아랍인은 냉랭한 대적을 싫어하고 마음으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기뻐한다. 그래서 주인의 기분이 어쨋든, 손님은 웃음 띤 얼굴로 영접되어야한다.

아랍인의 인사의식은 여성의 경우, 바른 손을 서로 맞잡고 그 손을 입쪽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볼에 카스할 때와 간이 키스하는 소리를 낸다. 여성들은 그때느이 기분 여하에 따라 서로 손에 키스하거나 입술에 키스하는 수도 있다. 볼에는 키스의 소나기를 퍼붓는다. 젊은이들은 상대가 가까운 친척이나 연장자인 경우, 선에 키스한다. 남성은 당신에게 평화를 하고 인사한다. 그 사이에 내객은 몸은 가볍게 굽히고 먼저 바른손을 가슴에 얹고 다름에는 입술, 이마쪽으로 손을 옮기는데, 이몸짓은 당신은 나의 마음, 말, 생각 속에 있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재회한 남성끼리는 이마나 어깨에 키스하는 수도 있다.


문학

남 이라크의 두 군사도시인 바스라와 쿠파에는 다수의 유목민이 전사로 거주하 고 있을때 부족마다 일용어가 달라 생활수단으로 아라비아어의 문법학이 발흥하 게 되었고 문법학자가 이슬람이전의 아랍고시를 연구하므로써 시학과 운율학의 발전을 촉진시켰고 또한 예언자 무함만은 아랍인의 교육에 관심을 두어 쿠란 (Quran), 예언자의 언행록인 하디스(Hadith), 예언자 교우들 및 훌륭한 무슬림들 의 교훈에 역점을 두어 쿠란(Quran) 과 쿠란해설(Ilm al-Qiraat), 법률(Figh), 문법(Nahw), 언어(Lugha), 의 발달을 가져왔다. 여기에 스콜라신학(Ilm al-Kalam), 수사학(Bayan), 문학(Adab) 등은 순수학문이라 하여 성원(모스 크:Mosque)에서 그 지적활동의 활발함을 보여왔다. 또한 번역 및 기록작업이 압 바스 시대에 와서 증가하고 중국에서 종이가 들어와 종이산업이 발달되어 서적 복사기들이 증대되어 도서관은 종교 과학 및 문학작품으로 그 자리를 꽉꽉 메우 게 되었다. 아라비아어 즉, 아랍어는 셈어로 이 이전에도 시를 발전시켜 그것을 전통으로 운율과 문형을 잡아놓았다. 정복사업에 의해 아랍어는 널리 이용되게 되었고 사막에서의 생활에서 대제국으로의 생활양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외국용어 를 빌어 아랍어 어휘내에서 스스로 발전 사용하였다. 11세기에 이르러서는 페르 시아에서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여 졌으며 이슬람세계의 문화를 대표하게 되었고 지금도 페르시아어, 터키어, 우루드어(Urdu), 말레이어 및 스와힐리어 (Swahili)등이 아랍어 자모로 쓰여지고 수많은 아랍어휘가 들어가 있다. 이어 대 제국으로써 통치체계가 확립되자 압바스왕좆의 칼리프들은 페르시아와 그리스학 문에 특별한 관심을 두어 콘스탄티노플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철학, 논리학, 의 학, 수학, 점성학, 음악, 지리와 역사에 관한 진기한 작품들을 수집하여 돌아오 도록 한 후 그것을 아랍어로 번역하도록 명령하였고 앗시리아(Assyrian), 찰디안 드 산스크리트(Chaldiand Sanscrit)로 된 작품도 아랍어로 번역하도록 명령하였 다. 번역에 있어서 그리이스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등의 저서를 아랍어 로 번역한 이븐 시나(Ibn Sina)와 이븐 루시드(Ibn Rushd)가 유명하다. 쿠란은 아랍어로 된 첫번째 책으로 운율이 담긴 산문체이며 그 영향으로 순수 문학과 소 론등의 작품이 많이 나왔다 학문과 교육의 발전은 모두 종교에서 유래하는데 문 법과 철자법은 쿠란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목적에서 발생하였다. 메디나에서는 독 실한 신자들이 종교적 학문 즉, 쿠란해설, 신학 및 하디스연구에 몰두하였고 이 하디스를 법으로 응용하는 문제와 또 하디스 귀절의 유래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슬람 법학과 역사학이 발생하였다. 앞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이랍부족은 시를 서로 경쟁하듯 발전시켰는데 앙랍인에게 있어서의 첫번째 입적은 웅변과 같이 청 중에 호소력을 중시하는 시로 평가되었다. 시는 공중과 사회문제에 중대한 정치 적 기능을 하여 시인은 주로 자신의 부족을 칭송하거나 그 적을 비방하고 대변인 역을 담당하였다. 그들은 단조로운 사막생활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정렬과 상상력 으로 베드윈(Bedouin) 생활의 진면을 표현하였는데 즉, 술, 사랑, 전쟁, 사냥, 지긋지긋한 자연환경, 부족의 용맹, 적의 비열함을 시로 읊었다. 우마미야조 시 대에도 구전되어온 시를 편집 발전을 위한 모형으로 삼았고 압바시야조 초기에는 페르시아인의 참여로 더욱 풍부해지게 되었다. 대표적 사인으로 장님인 바스샤르 이븐 부르드(Bashshar ibn Burd)와 신고전파인 무탄나비(Mutanabbi)를 들수 있 다. 문학작품에는 종교적 신서인 쿠란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유 명한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이야기들이 구전되면서 기술된것으로 천일야화의 원형은 사산조 시대에 중세 페르시아어로 기록된 페르시아.인도 기원의 200여개에 달하는 설화의 집성이었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이런 많은 설화를 통해 아라비아 인의 자유분방한 생활감정과 화려한 풍속을 그려나갔다. 그것이 압바조 시대에 아라비아어로 번역되면서 아라비아, 메소포타미 그리스, 시리아, 이집트등의 설화가 덧붙여진 뒤 16세기 초엽의 카이로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정의된 것이 다. 동서교통과 무역의 성행, 지리지식의 확대 메카의 순례등은 지리학의 발달을 가져와 학문적 기술과 더불어 많은 편의를 제공하는 효과를 가져왔고 지리학의 발달이 무역과 산업발달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여행가로 이름높은 이 븐 밧투다(Ibn Battuta)의 견문기는 중국에 관한 기사까지 있어 당시의 동서교통 및 아시아 각지의 사정을 연구하는 좋은 자료로 되고있다. 예언자 무함맡이 사망 할 때까지 대다수 아랍인이 문맹인이었으므로 그 이전의 역사기록이 뚜렸이 남아 있지 않고 하디스(Hadith)같은 사진만이 전승구전 되면서 그뜻이 애매모호해져서 역사기록에 대한 열망이 역사학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역사학은 교조 무함 맡의 생애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하여 연대기방식으로 기록함으로써 다양화 되었 으며 여러 역사가들에 의해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초기의 사서들은 역사 적 비평정신과 사관이 결여되어 있는 단순한 사실의 집합에 지나지 않았고 기술 양식도 하디스의 방법에 따라 사건이 일어난 현장증인의 진술을 들은 권위자을의 구전을 대대로 그 이름을 밝혀 기록하였다. 여기에 대화체나 때때로 해설적인 면 이 가미된 사서가 발전하는 중에 이븐 한둔(Ibn Khaldun)과 같은 유명한 역사철 학자가 탄생되었다. 그는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과거의 사 건 기록에만 만족하지 않고 역사를 해명하기 위한 합리적인 법칙과 역사를 형성하는 인간의 행동양식을 발견하려고 시도하여 역사에 새로운 폭을 가지게 하였는 데 그의 고전적인 서설 [무카디마]에 그의 사상이 전해져오고 있다. 그는 무카디 마에서 인간사회의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의 운명을 인도하는 도덕적, 정신 적인 힘이나 기후, 지세, 경제 같은 냉혹한 자연의 추세등 갖가지 요인을 인식하고 그 위에 최초의 역사적 발전설을 제시하였다 그는 제후의 비서일과 에스파니 아 및 아프리카 궁정에 대사로 출입하면서 각지로 널리 편력하였고 이러한 지방 의 격동하는 정치에의 참가가 그의 고전적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투철한 관찰력을 가능케 하였다. 학자로서의 객관성과 놀라운 명석함을 지닌 이븐 할둔의 학문적 업적은 이슬람의 유산의 일부로서 서구에 전해져 오래도록 학문의 기준이 되었다.


사상 

앞에서 보았듯이 칼리프들의 명령으로 9세기 중엽이후 아리스토텔레스, 프로 티노스, 포르퓨리오스의 철학서 신학서가 아라비아여로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무 타지라파는 바로 그영향을 받아 신의 계시와 철학의 진리를 조화시키려 함으로써 이슬람최초의 사변신학을 출현시켰다. 무티지라파의 아슈말리는 그러한 방볍론을 도입하여 정통파 이슬람의 신학체계를 완성시켰다. 철학적 기초로 신 플라톤주의 철학에 츼해 해석왼 아리스토텔레스의 심리학과 프로티노스의 종교철학적 세셰관 을 이용하므로써 이븐시나는 철학과 종교간의 부정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교에 있어서의 존리성과 합리성 객관성등을 유지해 나갈수 있었다. 이슬람의 초 창기는 기독교와 유대교의 영향으로 하디스속에 무시록과 탈무드의 자료가 잠입 한 것을 보면 알수 있으며 이런외래사상의 도입에 의해 철학, 과학, 수학, 천문 학, 지리학, 화학, 물리학, 박물학 및 의학의 발달에 결정적 역할을 할수 있었 다. 그리스 철학은 이슬람 세계의 영향을 미쳐 독자적인 무슬림 사상가를 나오게 하였는데 킨디(Kindi), 파라비(Farabi), 이븐시나(Ibn Sina) 및 이븐 루쉬드(Ibn Rushd)등을 들수 있다. 이슬람 문명이라 함은 이슬람교의 총체로 종교에 의한 문 화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데 이슬람이란 단순한 믿음과 의식의 체계가 아니라 국가, 사회, 법률, 사상 및 예술의 체계로 보고 있으며 종교에 의해 집결되는 하 나의 문명으로 보고 있다. 이슬람의 율법은 사리아(Shari`a)라 하여 이것은 쿠란 과 예언자의 언행록 하디스에서 법학자들이 발전시킨 성법으로 사회공동체의 표 준이 되는 법규로 개별인간과 공동체가 다같이 추구해야 하는 이상, 행위의 표본 으로 보고 있다. 법은 신의 계시에 의하여서만 나오고 누구에게도 입법권을 인정 치 않지만 관습법, 민법 및 통치자의 의지등은 비공식적으로 한정된 범위내에 인 정된다. 샤리아는 믿음과 의식뿐 아니라 헌법과 국제법등의 공법과 혛법과 민법 등의 사법등 인간 생활의 보든 면을 통괄한다. 샤리아에 의하면 이슬람 공동체의 우두머리는 할리파이고 그는 유일신의 대리인으로 한사람이상의선거권자에 의해 선임되며 군사, 종교, 세속적인 모든 문제에 있어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 할리파 는 이슬람 공동체인 이념국가의 우두머리로 활약하나 9세기 중엽부터 이슬람 세 계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된 군사령관의 꼭두각시로 변화하고 11세기에 이르러서 는 술탄(Sultan)이 할리파를 제치고 세속세계의 최고 권력자가 된다. 그는 무력 으로 일정영토를 차지한 후 할리파의 형식적인 기존 사실승인과 그에 따라 법률 학자들도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술탄의 권위를 할리파로부터 위임 받은것을 합법화 하였다.


과학 

이슬람 과학은 그리스.인도의 학술서 번역에서 시작하여 거기에서 배운 지식 을 자신들의 임상, 관찰, 실험에 의해 풍부하고 정확한 것으로 만들어 그유산을 모두함께 유럽에 인도하여 유럽의 근대 자연과학의 발전에 이바지하는에 큰 의의 를 두고 있다. 이는 아라비아어를 기원으로 한 Alcohol.Alkali.Chemistry(화 학),Algebra(대수),Alchemy(연금술)등 이화학 수학등의 단어에서도알수 있다. 이 슬람 과학은 그 자체의 고상한 목적을 위해 연구되고 있었지만 그 성과는 흔히 일상생활에 응용되어 실익을 얻었다. 가령 수학은 우주늬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 해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상업측량 같은 일상적인 분야에 응용되었고 천문학은 모슬렘의 예배시간, 메카의 방향, 라마단의 새로운 월출시간등 또 육상 및 해상 여행자의 방향제시에 큰 도움을 주었다. 외래학문으로 철학(Falsafa:이 용어는 논리, 형이상학, 수학 및 자연과학을 포함한다.), 기하학(Handasa:산술, 대수 및 역학등을 포함한 다양한 수학분야를 덧붙인다.), 점성학(Ilm al-Nujum), 음악 (Musigi), 의학(Tibb), 마술 및 연금술(al-Sihr wa al-Kimya)등이 교육되었다. 특히 수학에 있어서 커다란 지보에 큰 공헌을 끼쳤는데 인도의 힌두교도들로 부 터 기초적인 3가지, 아라비아 숫자의 바탕이 된 숫자와 십진법, 제로(0)의 개념 으로 수를 즐기고 추상적인 것을 사랑하는 이슬람 학자에게 있어서 높은 수학으 로 연구해 볼 가치와 발단이 충분하게 되고 1, 2, 3, 4등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와 대수학을 탄생시켰다. 대수학, 기하학, 삼각법 이론을 발전시키 고 적분법과 방정식계산, 쌍곡선과 원주의 교점을 구하는 방법으로 4차의 기하학 적 방정식을 풀었고 뒤에 해석 가하학의 선구가 되었다. 수학을 응용한 학문은 천문학으로 아랍인은 옛부터 사막에 살고 있었으므로 행성이나 항성에 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830년에는 바그다드에 천체 관측소를 설립하게 되었다. 천 문도구인 아스트롤라베(천체관측의)는 그리이스 이래의 측정상의 오차를 정정 하 였고 천문학상의 발달은 유럽은 물론 중앙아시아 중국에도 큰영향을 주었다. 지 구구체설이 생긴것도 이무렵이었으며 중국원의 수시력과 명의 대통력은 모두 아 라비아 천문학의 성과에 힘 입은 것이다. 점성학은 수학과 천문학과 밀접한 관계 를 가지고 있는데 초기 압바스 시대에 발전하여 바그다드 도시건설 계획시 최초 의 벽돌을 놓기위해 길조의 진전을 결정해야만 하는 점성가의 신호에 의지했다고 한다. 점성학 분야에서는 발크지방의 하디스 연구가 아부 마으샤르(Abu Maashar) 가 있는데 그는 점성학을 고부하여 47세에 두각을 나타냈었었다. 이화학 방면에 있어서는 8세기 말에 승화작용이 발견되었으며 여과, 증류 방법이 생겨 11세기 제약 의화학이 크게 발달외었고 글라스, 염색화약, 도자기등의 공업이 일어났다. 연금술은 저질의 금속을 귀금속으로 바꾸려 했던 알렉한드리아의 연금술과 블로 장생의 약을 만들려 했던 중국 연금술이 있는데 양쪽 모두의 영향으로 이슬람화 학이 발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연금술 자체는 신비주의적이지만 연금술의 방법 에 있어서는 이븐 알하이삼이 말했던 귀납법과 함께 이슬람교도의 뛰어난 과학적 밤범론으로 보고 있다. 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화합물의 조성을 이해 하는데 도움을 주는 수많은 연구가 행하여 졌고 금속의 정련, 강철의 초산제법, 유리제조에 있어서 이산화망간의 사용등 새기술을 발견 하였다. 어떤 종류의 화 합물을 결정화하면 순수한 화합물이 얻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순도에 의존하는 화 학 연구가 발전되었다. 알칼리, 안티모어, 알렘빅(증류기)등 많은 화학용어가 아 랍어에 그 기원을 두어 만들어 졌다. 이슬람 화학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친 과학자 고 자비르와 라지를 들수 있는데 라지는 중세 연금술에 필요한 화합물과 설비의 개요를 밝히고 물질을 동물, 식물, 광물로 분류하고 오늘날 실험실에서 볼수 있 는 화학기구(비이커, 플라스크, 시험관, 유리접시)등을 사용하였다. 무슬림은 또 한 의학에도 관심이 높아 인도의 유명한 궁궐에 들어오도록 조치를 취했 고 인디아 의사뿐아니라 그리스 지식에 의존하여 의학이 발달 하였다. 의사들은 의학에 뛰어났고 환자들을 치료했던 실습과 경험에 의존하고 그리스 책에서 회득 한 지식과 병을 진단하는 이론의 지식으로 현대의학의 발달을 다지게 되었다. 후 나인 이븐 이스학(Hunayn Ibn Ishag)은 "신체 병에 관한 저서" 라는 의학서에서 음식, 약, 대변이 나오게하는 완화제, 인체기관 사이의 차이점을 서술했다. 의학 이 생기기 이전 아랍인은 마술, 부적, 액막등의 사막의 미신행위와 몇가지 원시 적인 의약품 사용으로 병을 치료해 나가다 8세기경 페르시아에 준디샤푸르 의학 교가 생기면서 그리이스의 합리적 방법에 의한 치료법에 전해졌다. 이슬람 초기 의사는 대부분 페르시아 태생으로 그중 라지를 들수 있다. 그는 의술의 달인으로 그리이스의 명인 힙포크라테스와 비견되었는데 그의 100권 이상의 의학서 에서의 천연두 논문이 유명하다. 이 논문에서 라지는 천연두의 올바른 진단과 병상의 추 이에 대한 말과 치료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라지의 업적 중에 가장 빛나는 것 은 불후의 의학 대백과 사전의 편찬으로 그리이스, 시리아, 페르시아, 인도, 초 기아라비아 등의 지식을 집대성하여 광범한 임상경험에 입각하여 저술하였으며 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비켄나는 의학규전을 저술 치료법과 병의 단 계에 대해 서술했으며 이븐 시나는 결핵의 전염성과 여러 종류의 피부병, 심리장 애에 의한 현상인 상사병을 거론하였다. 이븐 마이문은 에스파니아 출신으로 그 는 식이요법이나 섭생법에 관한 것을 저술했다. 이슬람의사는 머리수술, 맥관수 술, 암수술등의 복잡한 수술을 많이 하였으며 아비켓나는 암에 대해서 조기에 치 료할것, 침식당한 조직전체를 적출해낼것에 관해 춫고하고 있다. 이 외에도 복부 수술이나 절단수술도 행하여 졌으며 이런 수술을 위한 마취약도 같이 발달하게 되었다. 가장 발달한 분야는 안과학인데 이는 사막에서 눈병이 잦았던 탓으로 백 내장 수술법이 근대적인 기술로 대체되기전 수세기 동인 사용되었다. 의사들은 주로 약을 조제하였으며 약을 중요시 한탓으로 감독관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이 와같이 이슬람 학자는 의학 분야에 현저한 공헌을 하였고 이외에 물리학에 있어 서 광학에 대한 연구와 비중 측정이 행하여 졌다.


예술 

이슬람 예술은 페르시아와 중국의 영향과 공헌에 크게 힘입어 장식과 공예분 야에서 이슬람 문명의 절충적인 면과 독창적인 면을 명맥히 볼수 있다. 예술에 대해서는 이슬람은 개성적이고 영속적이어서 미에 실용을 겸비케하고 인간적인 것을 추상적인 것과 결합시켜 종교의 품위를 높여주고 개인생활의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아랍인들은 정복 민족으로 갖가지 다른 민족과 요소를 일체화 시키는 가 운데 물질문화를 이끌어 갈수 있었다. 이슬람은 단순한 모방에서 그치지 않고 신 중히 취사 선택하여 새로운 형태로정리하여 특징있는 독자적인 이슬람 예술 체계 를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며 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자로 작용한 것이 종교이 다. 건축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모스크 양식과 아라베스크(Arabesque)무 늬로 돔과 미나레등 인공적인 조직미를 발휘하여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미를 들수 있다. 대리석과 인공지붕 색유리를 이용한 모자이크, 미나레트(뾰족탑)등 장식적 인 것에 중점을 두었다. 시리아에 있는 우마이야조의 성벽과 이라크에서 발굴된 세간살이 가구들을 볼때 외래공예인을 받아들인 흔적이 역력하며 모방에서 결국 이슬람 문화와 융화되어 독창적인 공예품이 나오게 되었다. 가장 뛰어난 것이 도 자기로 비잔틴과 사산조의 공예기술로 만들어진 자기, 중국에서 수입한 자기류와 이의 모방품 및 오랜 수련에 의하여 발전시킨 독창적인 자기가 함께 공존하고 있 었다. 이슬람 도자기는 특유의 러스티(광택)가 특징으로 아름다워서 널리 보급 되었으며 실용성과 사치성을 띠고 유행하게 되었다. 금속, 목재, 석재, 상아, 유 리 특히 섬유와 양탄자등 많은 공예품 생산이 활발하였고 양탄자는 '마술의 융단 '이란 신비함까지 주어 현대까지 각광을 받는 물품중에 하나로 꼽히고 있다. 아 랍인들은 시를 좋아하였으므로 음악도 또한 발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랍의 가 수나 광대, 노예 여성은 밴드 드럼이나 플루트 등의 리듬에 맞추어 풍자시나 애 정시를 낭송하였고 심벌, 케스터네츠, 하프, 템버린, 드럼등 여러악기 발달의 전 신이 되었다. 칼리프등은 음악을 좋아하며 모든 지역에서 광대와 가수를 소집하 고 많은 팁을 주도록 했다.


 이슬람의 현황


이슬람의 있는 나라의 인구별 비율

1. 인구의 99% 이상의 국가­터어키, 예멘, 아프가니스탄, 투니지아, 모로코, 서사하라, 몰리테이나, 알제리

2. 인구의 90% 이상의 국가­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카타르,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이란 파키스탄, 리비아 소말리아

3. 인구의 50%에서 90%인 국가­아제르 바아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벡키스탄, 카작스탄, 키르기스탄, 타직키스탄, 알바니아 말리, 니제르, 세네갈, 감비아, 기니아, 수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쉬

4. 인구의 10%­50%인 나라­코트딜보이레, 부르키나파소, 가나, 토고, 베닌, 나이제리아, 카메룬, 차드, 에디오피아, 말라위, 모잠비크, 탄자니아, 수리남

5. 인구의 5%에서 10%인 국가­프랑스, 우간다. 케냐, 인도, 미얀마,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보스니아

6. 인구 1%에서 5%인 국가­미국, 캐나다, 오스트에일리아, 영국, 벨기에, 네델란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중국, 타일랜드,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구야나, 가봉, 콩고, 자아레, 남아공화국, 마다가스카

한국의 무슬림


한국에서의 전래와 현황

불교와 그리스도교 문화 속에서 살아온 한국민에게 생소한 이슬람교가 그 두터운 벽을 뚫고 한국에 전래된 것은 1955년이다. 이슬람교의 한국 전파는 1955년 9월, 6.25동란때 유엔군으로 참전하였던 터키 부대의 압둘 라흐만 중군이맘(성직자)과 주베르코취 종군이맘에게 한국 포교를 위하여 지도와 협조를 요청한 고 김진규와 윤두영에 의하여 포교가 시작되었다.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한국 이슬람교 협회를 발족, 초대회장 김진규, 부회장 겸 사무국장 윤두영과 신도 70여명으로 시작되었다. 초창기 10여년간에 포교운영의 고난을 극복하고 65년 한국 이슬람교 중앙연합회로 재발족, 67년 3월 재단법인 한국 이슬람교로 인가되어 신도 7,500의 교세를 갖게 되었다.

76년5월 현재의 용산구 한남동에 중앙성원을 건립하고 (사우디 아라비아, 기타 6개국의 원조로) 80년 항도 부산에 제2 성원, 81년 경기도 광주에 제 3서원을 건립하였다. 또한 해외교포를 위하여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인도네시아에 지회가 설립되어 국내의 신도수 약 32,000의 교세를 가지게 되었다. 80년 5월 최규하 대통령의 사우디 아라비아 방문시 고 칼리드왕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 이슬람 대학교 설립 공사비 일체의 제공을 확약 받았으며 경기도 용인에 13만평의 대지를 확보하고 기공식을 가졌다. 한국 이슬람교는 70년대의 중동 붐을 타고 두드러지게 교세가 확장되어 근래에 매년 중동 각국에서 무슬림이 되어 귀국한 1,700여 명의 기능근로자 신도들을 핵으로 삼아 신도 배가 운동을 펴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이슬람교는 한국인의 습성 및 기호와의 차이점을 비롯하여 예배의식의 용어 및 교리의 토착화 등 숱한 난제를 안고 있다.

1980년 7월 한국 정부의 후원으로 경기도 용인에 국유림 13만평을 이슬람 대학 부지로 확보하였다. 1981년 6월 경기도 광주에 성원을 준공하고 개설하였다. 1982년 인도네시아 임시 성원을 개설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한국 이슬람 대학 건립추진 한국­사우디 공동위원회를 개최하였으며 이에 대한 합의 각서를 교환하였다. 1986년 4월에는 안양 라비타 성원을, 같은 해 11월에는 전주 아브바크르 알 시다끄 성원을 준공하고 개원하였다.

이후 이슬람은 한국 내에 이슬람 대학교를 세우려고 많은 시도를 하여 땅까지 마련하였으나 국내 이슬람 지도부의 분열로 무산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언제가는 그들의 뜻대로 될 수 있지도 모른다. 한국에서의 이슬람교 활동은 한국어 코란 해설서와 번역 출판, 이슬람 문화 예술 전지회 개최, 어린이를 위한 이슬람 일요교실 운영, 꾸란 연구반 모임, 이슬람권 국가의 이슬람 대학의 유학생 파견, 가난한 사람과 늙은 무슬림을 위한 봉사, 매년 하기 갬프 개최, 사회봉사를 통한 선교, 이맘 코스의 철저한 훈련, 무슬림 금요 교실 운영 등이다. 현재 이들의 본부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732-21에 두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이슬람 인구는 약 4만여명(1980년 자료) - 현1998년 자료는 한국에서 4만5천에서 5만명의 신도를 가지고 있다 - 으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숫자는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의 외국인 무슬림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얼마나 될까? 1996년말 법무부에서 낸 통계에 의하면 한해 동안 우리 나라에 입국한 사람은 아시아인이 2,070,253명이었고 아프리카인이 8,621명이 었다. 이 수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1996년 한해 동안 300만 가량의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이 우리나라를 찾았다는 것은 그중 상당수가 무슬림이라는 것이다. 이중에서 근로자만 살펴보면 1996년말 22만명이었는데, 그 중에서 산업 기술 연수생이 6만 8,200명, 기술 지도 등으로 입국한 합법 취업자가 1만 3,400명, 불법 체류자는 12만 9,054명으로 나타났다. 지금이 외국인 무슬림 근로자가 가장 많이 한국에 들어오고 있고 한국인이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역사상 가장 많이 나가 있는 때이다. 이들 무슬림 근로자를 만나 대화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이 필요하다. 이슬람권 선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은 이슬람이 선교적 종교이고 지금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이슬람 국가들이 현재 많은 정치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고 한국과 동아시아에 무슬림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속의 무슬림 형편


현대 무슬림의 형편

현대 세계에서 가장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종교가 있다면 바로 이슬람교이다. 비공식적인 통계상으로 약 12억을 넘어서고 있다.The Church Around The World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50여년 동안에 기독교는 47%의 성장을 보였고 불교는 63%,힌두교는 117%의 성장을 보였는데 이슬람교는 500%의 성장을 가졌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이 급성장하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 지역 인구 증가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슬람교의 성장 요인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첫째가 자연적 증가인 출생률에 따른 성장이요, 둘째는 유럽과 북미에서의 이민 성장이요, 셋째는 아프리카 지역과 인도네시아 지역에서의 개종이다. 여하튼 이슬람교 인구는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선교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2천 년대에는 이슬람교가 전세계의 인구 26.9%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무슬림의 3개 언어 지역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세력 중 기독교에 대적하는 가장 큰 세력은 바로 이슬람교이다. 현재 조사에 의하면 무슬림 인구는 매년 5천만명씩 증가하고 있고 이들은 유럽 및 미주 지역에서도 탄탄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러한 무슬림 지역은 대개 아랍어권과 터어키어권,이란어권 등 3개 지역으로 나눌 수가 있다. 먼저 아랍어권은 20여개 국가에 사는 인구 2억 명 이상이 되며 터어키어권은 아제르바이잔,서부 중국 등 몇 개국에 불과하지만 인구는 1억 5천만명이 되며 이란어권은 타지크스탄,아프카니스탄 등의 지역으로서 인구는 7천만 명에 달하고 있다. 물론 이 지역 외에 기타 언어권으로 인도 동부 방글라데시의 1억,인도네시아의 1억 7천만,말레이지아 등 아시아 전역과 유럽에도 무슬림은 상당한 세력을 확보하고 있다. 크게 나누어 볼 때 3개의 언어 지역으로 볼 수 있으나 다양한 민족,수많은 언어를 가진 무슬림 종족은 약 천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무슬림은 선교의 대상국으로 언어의 장벽이 가장 높은 미전도 지역의 핵심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슬람교의 확장

역사적으로 이슬람교가 성장한 시기를 분석해 본다면 세 시기이다. 첫번째 시기는 마호메트가 죽은 직후 유럽이 정복되었을 때이며, 두번째 시기는 터키를 통하여 다시 한번 유럽을 정복한 중세기이고, 세번째 시기는 오일 위기를 가져오면서 그들의 세력이 확장되는 때라 할 수 있다. 이슬람교는 더 이상 중동 지역의 종교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기독교 국가 미국에서도 이슬람교는 주요 종교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슬람 연구소의 이산바그비는 그의 조사에 의해 현재 미국의 이슬람교도는 4백만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의 수도 1천 2백여 개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메사추세스 대학 이슬람학과 교수인 이븐 하다드는 이슬람교의 성장률이 이 같은 속도로 지속될 경우 유대 교도들의 수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영국 왕립 지리 학회가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유럽내의 이슬람교도들은 모두 7백 50만 명 정도이다. 프랑스에서는 가톨릭에 이어 이슬람교가 제2의 종교로 자리잡았고 영국의 경우 국교인 성공회와 가톨릭에 이어 제3의 종교로 부상하고 있다. 프랑스 마르세유시의 경우 인구의 4분의 1 가량이 무슬림이고 그들이 유럽 선교의 교두보로 삼고 있는 영국의 경우 수도 런던에만 4백여개의 모스크가 있다.

최근에는 소련이 무너지면서 러시아 공하국 내에 슬라브계 민족국가가 공동체를 이루며 5-6개의 새로운 이슬람국가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서울, 부산, 전주, 안양, 경기, 광주에 5개의 이슬람 사원이 설립되었고 약 4만 명의 한국무슬림이 있어서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활동을 가지고 포교하고 있다. 전세계의 무슬림은 '무슬림 세계 연맹'.'이슬람 기금 재단'등 중동 석유 부국들로 이뤄진 기구들로부터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유럽 및 아프리카 지역의 이슬람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회교 사원 유럽 위원회는 유럽 전역을 가청취권으로 하는 무슬림 방송국 건립을 계획 중에 있다. 공산권이 무너진 현대 이슬람 지역은 기독교 선교의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동지역의 이슬람교

중동은 지리적으로 독특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3대륙이 교차하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과거나 오늘이나 세계 전략상 이 지역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길은 중동을 통하여야 한다. 이는 유럽 세력의 관심이 대상이 되었으며 특히 영국은 생명선인 인도를 지키기 위하여 중동에 대한 관심이 컸었다. 러시아는 흑해를 통하여 지중해로, 인도양으로 가기 위한 남진 정책을 취하여 왔다. 유럽 세력들은 아시아로 가기 위하여,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하여 오늘날의 폴란드가 유럽을 지키는 방파제 역할을 하듯이 중동이 필요하였다. 영국은 인도의 안보를 위하여 중동을 전략 개념으로 인식해 왔다. 이처럼 중동은 언제나 대륙 세력인 소련과 해양 세력인 유럽의 각축장이 되었다. 오늘날은 유럽의 역할을 미국이 하고 있다. 이러한 중동은 4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는 지역이다.

1) 세계 무슬림 12억의 중심지

2) 이슬람 성지의 지역

3)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서 이슬람 종교철학 대 기독교의 지역

4) 석유의 생산지

위의 네가지 특성을 보았을 때 모든 국가가 외교정책에서 중동을 외면할 수가 없게 된다. 또한 기독교 선교 전략적 측면에서 볼때 중동 지역은 기독교 선교의 저항적인 지역(resistant belt)으로서 주로 이슬람교 국가들로 형성되어 있다. 선교적 의미에서 미복음화(unevangelized)지역이요, 미전도(unreached)지역이요,10/40창의 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중동의 이슬람국가는 선교사들의 비자를 제한하는 나라들로서 기독교 선교 활동이 금지되어 있다. 회교 이외의 어떤 종교의 예배나 종교 활동도 종교법에 의하여 금지되어 있다. 기독교 활동이 전면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에 의한 선교활동이나 외국으로부터의 종교서적 반입 및 반포 활동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이슬람교 국가군인 중동 국가들은 오직 이슬람교만이 유일한 종교로 생각하고 있는 반기독교적 세력 국가들이기 때문에 번거로운 법률적인 조문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들 국가들의 헌법에 나타난 종교 관계의 조문의 특성은 헌법 제1조에 "이 나라의 종교는 이슬람교이다"라고 밝히거나 신앙의 존중, 예배의 자유로운 행사를 보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 바로 뒤에 다음과 같은 조항이 반드시 뒤따른다. "누구든지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민적 통일, 공화국의 제도와 국민의 일체성의 원칙을 이해하면서 위의 제 권리와 제 자유를 행사할 수 없다"라고 한다. 바로 이러한 금지법으로 이루어진 이슬람교 나라들이 중동 지역이다.


이슬람권의 박해 실상

이슬람권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2세기 초 십자군 전쟁 이후 이슬람과 기독교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이슬람권에서의 기독교 박해는 계속 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확장되고 구소련 해체 후 우즈베크, 카자흐 공화국 등이 이슬람국화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이슬람 세력이 강화되면서 자국내 기독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고 있다. 지난 2년간 만해도 중동 지역을 비롯해 아프리카,아시아 이슬람권에서 교회가 파괴되고 교인들이 다치며 선교사들이 투옥되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1) 사xx에서는 지난 92년 10월에 필리핀인 목사와 그의 동료를 기독교를 전파했다는 이유로 체포했다가 BBC 방송 보도로 전세계에 알려지자 정부는 처형 하루 전에 석방하였다.

2) 이xx에서는 선교활동을 하던 5명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경찰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3) 말xxxx에서는 기독교 교수와 감리교 출신의 교인이 추방되었다.

4) 아xxxx에서는 영국인 선교사가 기독교 선교 책자를 반포했다는 협의로 구속되어 6개월간 혀을 받고 추방되었다.

5) 이x에서는 현지인 교회 목사가 피살되어 순교하였다.

6) 파xx에서는 기독교로 개종한 약 200여 명이 회교도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되었다.

7)txx에서는 태권도 사범인 선교사가 간첩 협의로 체포되어 추방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위의 사실과 같이 중동 선교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지난 80년 이후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91년에는 신앙 때문에 투옥된 기독교인이 235명에 달했으며 극단적인 이슬람 지도자들은 [모든 기독교인들을 쓸어버리겠다]고 공공연히 단언하고 있는 이유 때문이다.


 이슬람의 선교전략


이슬람선교의 장애

이제는 어떻게 이슬람교의 선교를 해야할 것인가를 논하려고 한다. 그러기에 앞서 먼저 이슬람 선교의 장애 요소를 살펴보아야 하겠다.


첫째, "종교 다원주의"의 영향을 제일 먼저 들수 있다. 사실상 이슬람은 기독교와 유사한 교리를 가지면서도 그것이 기독교 교리보다 훨씬 간단하고 합리적이 면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기독교의 선교가 설득력에 있어 취약적이 있다. 교리의 유사성 때문에 기독교인들 조차도 혼동되는 점이 있음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슬람교는 금요일을 안식일로 하고, 이부다처가 허용되며, 하루에 5번 의무적으로 기도하고, 정기적으로 금식을 하며,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 금요일에는 특별히 안식일의 개념을 가지지 않고, 긴 의복을 입으며 무릎을 굽히고 소변을 보는 차이점이 있다.


둘째, 교회의 교리존쟁과 분열 및 교회의 타락을 들수 있다. 사회주의의 실패가 공산주의를 낳게 했듯이 당시 기독교의 실패가 이슬람교를 낳게 했다. 이스람교의 발흥 당시 기독교의 교리 논쟁이 치열했다. 이슬람교는 사람의 선행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믿는 행위중심의 도덕적 종교여서 도덕생활을 중시했다. 이런 그들의 눈에 비친 서방 기독교 국에 사는 사람들의 부도덕한 생활상과 극단적인 물질주의가 무슬림에게 기독교를 하등한 종교로 느끼게 하였다.


셋째, 십자군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다. 십자군 운동이 기독교도들에게는 지나간 한 역사에 불과하지만 무스림들에게는 잊기 어려운 투쟁사이며 이슬람교를 말살코자하는 종교라는 오해를 갖게 하였다.


넷째, 식민주의 역사이다. 십자군 전쟁 다음으로 기독교국가들이 범한 잘못은 식민주의이다. 기독교적 서구가 과학과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약한 나라를 식민지화 한 것은 지금도 기독교선교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서구는 제 3세계로부터 저항을 받고 있다. 터미와 이란,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한 모든 이슬람국가들이 19세기와 20세기초에 다 서구 식민지의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다.


다섯째, 이슬람 사회의 폐쇄성과 박해를 들 수 있다. 입국비자를 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슬람 법률에 따르면 배교의 형벌은 사형이다. 이슬람교가 국교로 되어있는 나라에서는 이슬람교를 포기한다는 것은 조국을 배반하는 행위로 간주한다. 하지만 조금의 관용이 있는 곳에서는 기독교로 개종하는 자들의 목숨을 잃는 위험만은 면할 수 있다. 그 대신 그의 직업과 친구들과 가족을 포기해야만 한다.


끝으로 사단의 방해와 선교일꾼의 부족이다. 사단이 인간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참 진리를 구별할 수 없게 하는데, 무슬림 나라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사단의 방해하는 힘을 생생히 느끼고 있다. 이런 무슬림 세계에서 열매를 맺기란 너무나 힘든 것으며, 이것은 선교일꾼의 부족으로 이어진다. 전세계적으로 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기독교 선교사와 무슬림 선교사의 숫자를 비교해 보면 기독교 선교사의 수가 절대적 열세에 있다. 단적인 예로 무슬림 나이제리아에서만 10만 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데 반하여 기독교 선교사는 90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


 글을 마치며

이슬람이란 종교는 광대하기 그지 없었다. 이들은 종교만이 아닌 생활이며 삶이 였다. 그래서 난 이글에서 이슬람의 발생에서부터 신학 그리고 그들의 삶을 조사하려 하였다. 그러나 많은 부분이 미약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글을 준비하며 이슬람을 향한 선교를 더욱 깊게 생각해 본다. 이슬람은 너무 과격하기에 다가가기가 무서운 나라라고 말하지만 이들의 성품을 조사하며 이들에게 역사적 모습으로인해 잘못인식되는 것과 현재의 정치적 원인으로 인한 것들을 많이 보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싶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선교정책을 짜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이일을 할 때에 이슬람에 있어서는 인내와 사랑이 특별히 많은 사람을 보내야 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과 이야기함에 있어 그들의 것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인식하고 파송전 어떤 사람보다 성서적 지식과 영적준비를 해야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의 예배구조나 삶속에 기도의 삶을 보면서 나의 삶을 돌아본다. 이들은 하루 5번 그리고 금식을 하는데 나의 삶은 얼마의 시간을 드리고 있는가와 중보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나의 생활을 더욱 하나님과 동행할 것과 선교사들을 위해 중보해야함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들을 더욱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출처 : 푸른 향기
글쓴이 : 푸른향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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