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종교의 역사는 자연신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다음에 등장하는 신은 태양신입니다.
그러나 자연신, 태양신은 절대적 권능이 없다는 것을 인도인들은 깨달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태양은 우주에 의하여 창조되어진 것이므로
절대적 권능의 창조신 보다는 하위의 신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절대적 권능을 보유한 창조신을 갈망하게 되었고
드디어 제 1세대 창조신인 위슈와 카르만(visva - karman)을 탄생시킵니다.
창조신인 위슈와 카르만은 우주창조를 목수가 집을 만들듯이
뚝딱 뚝딱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도인들은 위슈와 카르만이 우주라는 집을 만들때 재료는 대체 어디서
가지고 왔으며 그 재료는 누가 가지고 왔는가라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닝기리~ 인도인들은 별 것 다 따집니다... ㅎㅎㅎ
그렇지만 절대적인 신은 모순 없이 모든것이 설명되어야 하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잠시 여기서 기독교의 창조론에 대한 주장을 보면 無(태초)로 부터 만들었다고 합니다.
위슈와 카르만의 우주 창조도 기독교의 창조와 비슷해서
그냥 無에서 나왔다고 빡빡 우기면 될터인데
인도인들의 논리는 구렁이 담넘어 가듯이 어물쩍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숫자라는 골때리는 것을 만들어낸 민족이 아닙니까?
여기서 그들의 논리를 추론하는 방법을 잠시 엿보기로 합시다.
A는 A이다. (동일률)
A는 A가 아닌 것은 아니다. (모순률)
고로 A이던가 A가 아닌것은 아니다. (배중률)
이런 논리력으로 결론을 이끌어 내는 인도인의 사유로는 기독교 처럼
無에서 有가 나온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기왕 여기서 기독교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왜 자꾸 믿음을 강조하는가 하면은 기독교 자체가 말이 안되는
모순을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 하는 것입니다.
말이 되고 합리적이라면 굳이 믿음을 강조 할 필요는 없겠죠?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그럼 창조하시기 전에는 하느님께서는 공간적으로 우주 밖에서 존재하셨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렇게 우주 밖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또한 누가 만들었는지요? "
" ........................ "
"우주 밖이 존재한다면 우주 밖의 창조주 즉, 하느님을 창조한 신이 또 있다는
결론이 나오고 또 그 밖의 밖을 창조한 무한대의 창조주가 또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부디 설명해 주시옵소서"
"그냥 믿어야 하느니라"
"설명해 주시면 믿겠습니다."
"너 안 믿으면 지옥 보낸다! 알간?"
"믿기에는 너무 불합리합니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잖아요"
"너 말잘했다. 너 말대로 불합리하기 때문에 더욱 믿어야 되느니라... 자기 나 믿지?"
말이 잠시 빗나갔는데 위에서 보았듯이 인도인들은 도출된 문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1세대 창조주인 위슈와 카르만으로는 창조의 재료와 공간이 설명되지 않는
문제점이 생기고 문제가 있는 신은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인도인들은 확실히 설명이 되는 다른 신을 찾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인도의 아리안족의 기질과 기독교의 모태가되는
샘족의 기질의 차이가 보이지 않나요?
샘족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이에 반하여 아리안은 매우 논리적이고
사유적인 기질의 차이가 보입니다.
아리안의 이런 민족적 우월감이 훗날 나치에 의해
아리안 우월주의가 탄생하게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제 1세대 창조주인 위슈와 카르만은 재료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도태가 되고 제 2세대 창조주인 프라자 파티(Praja - Pati)가 등장하게 됩니다.
프라자 파티는 우주를 창조할 때 어머니가 자식을 낳듯 생산했다고 합니다.
이런 생산과정에서 1세대 창조주인 위슈와 카르멘의 창조의 재료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2세대 창조주에게 또 다시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창조주가 우주를 낳았다면 그 창조주는 우주 안에 존재했느냐
우주 밖에 존재했느냐의 공간적인 문제점을 도출해내기 시작합니다.
즉, 창조주가 우주안에 존재했다면 자기가 자기를 낳았다는 요상한 결론이 나오고
우주 밖에 있다면 대체 우주밖의 개념은 무엇이냐라는 의문이 생기는것은 당연한 이치이죠.
한번 생각해 봅시다.
밖이라는 단어는 안이라는 단어가 있어야지 성립하잖아요?
물론 안이라는 것도 밖이 있어야 존재하지만....
우주를 낳아야 비로소 우주 안이라는 공간이 생기고 그 우주의 밖이 생기는 법인데
안이 없던 시절에 어떻게 밖이라는 존재가 가능하냐는 말입니다.
밖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밖은 대체 누가 창조 했으며
그 밖의 밖은 또 존재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반문을 합니다.
즉, 창조신인 프라자 파티와 우주를 포함해서 그것을 낳은
그 무엇이 또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기독교도 창조에 대하여 이러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기독교는 안과 밖을 떠난
절대타자 라는 설명을 하는데 고대 인도에서는 이런 절대타자라는 주장에 대하여
한가지 비유를 듭니다.
"네모난 동그라미"는 말로서는 가능한데 실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 2세대 창조주인 프라자 파티의 공간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 인도인들은
안과 밖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절대신을 찾아나섭니다.
이러한 종교의 역사를 보면 기독교는 문제점이 발생하면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그냥 덮어버리고 나아가는데 큰 문젯점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원시적 종교의 형태로 남게되고
억지논리라는 곱지 않는 시선을 받게 되는 큰 이유가 바로 이렇습니다.
반면에 인도인들은 문제점이 발견되면 스스로 인정하고 보완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이러한 두 종교의 차이점은 아리안족과 샘족의 민족성 때문인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샘족은 이성적인 것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도인들은 새로운 절대적인 창조신을 찾게되고
드디어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절대적 창조주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브라만 또는 브라흐만(Brahman)이라 불리우는
제 3세대 창조주로 인도종교의 역사에 등장하게 됩니다.
태초에 브라흐만은 스스로 불어나고 싶다, 많아지고 싶다는 바램(多化의 欲)에 의하여
스스로 풍선을 불듯 불어서 우주를 창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인도인들은 왜 브라흐만이 불어나고 싶다(창조의욕)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의문을 품습니다.
그 의문의 해답은 예상외로 간단합니다.
창조신인 브라흐만은 유일신으로 혼자이니까 외로워서 세상을 창조했다고
인도인 스스로 해답을 제시 합니다.
처음에는 불을 불어내고, 두번째는 물을 불어내고,
세번째는 땅을 우주가 가득찰 만큼 불어냈습니다.
윗글에서 불어낸것 중에서 바람이 빠진것 같지만
불어냄 자체가 바람이니 당연히 바람을 포함시켜야겠죠.
그리하여 이 地, 水, 火, 風 이 서로가 뭉치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모든 물질의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생겨난 모든 물질(해, 별, 달, 강, 사람 등)은
물질적 형태로서의 조각과 같아서 아직까지 정신 내지 생명이 없고
오로지 물질적 형태로 존재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제 3세대 창조신인 브라흐만은 자기가 만든 우주의 구조물이 너무 아름다워서
기뻐한 나머지 자기가 만든 세상의 구조물의 숫자 만큼 자기 자신을 쪼게어서
그 구조물 안으로 들어 가게 됩니다.
이렇게 쪼게어진 브라흐만을 Jiva-Atman(지바아트만)이라고 합니다.
지바의 뜻은 생명, 영혼이고 아트만은 자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바아트만이란 생명력을 지닌 개체자아라고 해석하면 됩니다.
여기서 브라흐만의 등장으로 재료의 문제는 지,수,화,풍으로 깔끔하게 해결되었습니다.
브라흐만은 스스로 불어서 우주를 창조했으니 브라흐만은 우주 밖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브라흐만 스스로 자기가 만든 우주안으로 들어옴에 따라 스스로 우주가 되었으므로
안과 밖의 문제도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새로운 문제점이 지적되기 시작합니다.
사람, 동식물 등 생명이 있는 생물안에 브라흐만이 존재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돌, 산, 도구 등 무생물에게 생명력이 있는 브라흐만(지바이트만)이 존재한다면
왜 외부적으로 반응을 하지 않고 고정된 채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에
사상가들은 그런 물질에는 지바아트만이 기나긴 잠에 빠져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므로 브라만 사상가들은 강가의 모래알 하나 하나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므로 만물을 존중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태초의 브라흐만과 나의 아트만(자아)이 동일 하다는
그 유명한 범아일여사상이 나오게 됩니다.
이러한 고차원적인 사상이 나타났던 시기가 지금으로 부터 3천5백년 전인데
이 시기에 다른 문화권에서는 신을 대충 조물주의 개념으로만 생각했지
이렇게 인도인들 처럼 세분화 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브라흐만 신에게도 몇가지 오류가 있음을
인도인들은 또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첫째로 무지의 문제입니다.
브라흐만이 쪼개어져서 지바아트만으로 나에게 들어왔는데
나는 왜 내가 브라흐만임을 모르는가?
금은 쪼개어져도 금인데 말입니다.
두번째로 고통의 문제입니다.
나는 왜 죽음을 비롯한 괴로움을 느껴야되는가?
세번째로 죄악의 문제입니다.
내가 긴성한 브라흐만인데 나는 왜 죄를 짓는가?
이 세가지 지적은 인도인 뿐만 아니라
현재의 모든 종교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들 입니다.
여기서 인도인들은 3천년전에 신의 모순과 한계를 발견한 후에
신을 포기하게 되고 상업이 발달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무신론적인 사상인 사문사상(Sramanism)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슈라마니즘을 한역으로 사문사상,
출가하여 떠도는 무신론 수행자를 슈라마나,
이를 한역으로 사문이라고 합니다.
이들 여러 사문의 일원으로 불교의 석가모니, 자이나교의 마하비라 등
당대의 슈퍼스타들이 대거 등장하게 됩니다.
이에 반하여 번영을 누리던 브라만 종교는 대도시에서는 사문사상에 밀려서
위축되기 시작했지만 시골등 지방에서는 아직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여
인도의 토착의 민간신앙과 융합하면서 점차 힌두이즘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여기서 브라흐만(브라만)을 신봉하고 제사를 받드는 종교인을 브라마나라
또는 브라만이라 하고 브라흐만 사상을 한역으로 바라문 사상이라 불립니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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