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스토아학파
정용수
물질문명과 속도로 표현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자 한다면, 春秋戰國시대의 老子와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학파 사상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東洋과 西洋이라는 매우 이질적인 공간에서 각자의 삶 속에서 ‘자연으로 돌아가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었던 철학자가 老子와 스토아 사상가들이었다.
이번 호에서는 老子와 스토아학파를 비교함으로써,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 우리가 지침으로 삼을만한 주장들을 살필까 한다. ‘속도로 내몰리고 물질에 구애되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현대인의 방황을 돌아볼 수 있는 지침은 없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 老子와 스토아학파 철학자는 각기 춘추전국시대와 헬레니즘시대라는 혼란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삶의 참다운 모습을 모색한 사상가들로서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귀감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착안해 보았다.
자연으로의 회귀
스토아학파가 활동한 시기를 철학사에서는 헬레니즘 시대라고 부른다. 헬레니즘 시대는 서양사에서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기원전 323년)에서부터 제정로마의 시작을 알리는 악티움 해전(기원전31년)까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시기의 아테네는 기원전 5세기경 페리클레스 치하에서 문화적 번영을 구가했던 아테네와는 판이하게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펠로폰네소스전쟁 이후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은 서서히 시들어갔으며,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는 서서히 로마가 지중해를 건너서 세력을 넓히기 시작했으며, 적어도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로마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른바 찬란한 서양문화를 개시한 아테네인들로서는 스스로의 자존심을 견디기에도 벅찬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던 시기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로마의 문화와 사상에는 많은 부분에서 그리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썩어도 역시 준치다”라고들 않았던가? 그러나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은 이전의 독자적인 그리스 사상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철학사가인 렘프레히트는 이를 두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 이전과 이후를 표현하기 위해서 ‘Hellenic(희랍의)’과 ‘Hellenistic(희랍스러운)’이라는 형용사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도 한다.
아무튼 헬레니즘 문화는 고대 그리스에 그 사상적 연원을 갖고 있지만, 그리스 문화가 가진 활력이나 생기를 잃고 있었다.
펠로폰네소스전쟁과 그 이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의 아테네 진출 등, 문화와 문명이 말밥굽에 짓이겨지면서 가져온 위축은 그리스 사상의 위축으로 이어진 듯 하다.
스토아학파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가진 사상이다. 스토아학파는 소크라테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키니코스학파로부터 발전한 사상이다. 키니코스학파의 철학자 중에 잘 알려진 사람으로 디오게네스가 있다. 그에게 있어서 덕이란 모든 세속적 소유와 쾌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디오게네스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옆에 커다란 항아리 같은 곳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아테네를 점령한 알렉산더 대왕이 아테네에 디오게네스라는 위대한 사상가가 살고 있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는 그를 만나려 친히 나섰다고 한다. 디오게네스 앞에 다가간 알렉산더 대왕은 “그대가 아테네에서 위대한 사상가라니 내가 만나러 왔다.
당신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지금 들어 줄테니 말을 해보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잠자코 햇볕을 쬐고 있던 디오게네스는 “나는 지금 일광욕 중이니 내게 그늘이지지 않도록 저리 비켜서 주시겠소”라고 했다고 한다.
자칫하면 괴로움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회적 유대나 인간적 관계로부터 초연하게, 스스로의 고립적인 생활을 즐기면서 만족하려 했던 디오게네스로서는 위대한 황제의 제안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디오게네스는 문명이나 모든 인위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철저한 금욕적 생활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러한 키니코스적 전통을 이어받은 스토아학파는 제논이라는 철학자가 창시했다고 알려지는데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사람들은 로마의 재상이었던 세네카, 노예신분에서 자유민이 되었던 에픽테토스, 그리고 로마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이 있다. 키니코스의 전통을 이어 받은 스토아학파는 세상사로부터 초연해지는 것이 최상의 덕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감정적 얽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라는데 대해서는 이견이 여지가 없었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우주는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으므로 인간이 넓은 의미의 우주의 법칙에 상응하는 것이란 마치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자신의 본질적 본성인 이성에 일치시키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자연에 따라 살아가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세네카는 철학을 ‘행위의 학문’으로 정의하고, “철학이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올바른 이성 또는 영예로운 삶을 위한 지식 또는 올바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실천적 능력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선하고 영예롭게 살기 위한 계율이 곧 철학이다”라고 한다. 그에 있어서 철학은 우리의 삶 내지 실천적 행위와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것이고, 그런 한에서 인생의 목표인 행복은 스토아적 의미에서는 덕, 즉 ‘자연에 따르는 삶’에 있다.
인간의 행위가 자연의 법칙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의지가 신의 의지와 일치되는 경지에 있는 것이다.
『명상록』이라는 저술로 잘 알려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다음과 같이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 “아, 우주여! 그대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은 모두 나에게도 부합한다. ……설령 우연이라고 보이는 것도 사실은 모두가 섭리 안에 있는 것이고, 자연의 과정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모든 부분에 이로운 것이다. ……춥든 덥든, 피곤하든 휴식을 취햐였든, 욕을 먹든 칭찬을 듣든 오로지 네 의무에 충실하라.”
스토아학파의 용어에서 자연은 물질적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나 인간의 본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 만물 속에 일관하고 있는 우주의 목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과학적으로 본다면 자연의 법칙이라 하겠지만, 종교적 표현을 빌어 표현하자면 신의 섭리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토아주의자들은 종교적 경건성에 이를 정도로 의무를 강조하기도 한다.
스토아학파의 전통적 생각으로는 오직 이성적으로 숙고하고, 온갖 정열이나 감성적인 욕망은 제거하는 것이 훌륭한 삶이다. 감정은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공정한 판단을 방해하는 도덕적 질병이라고 스토아학파는 생각했었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어떠한 종류의 사사로운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고 그러한 상태를 아파테이아(평정심)라고 보았다.
아파테이아란 욕망이나 두려움, 혹은 쾌락이 주는 매혹뿐만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의 동요나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이며, 그런 상태에 이르러야 현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동요나 격정은 pathos적 열정에서 비롯하는 것이고, 열정에서 벗어나 스스로 침잠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평온하게 만들어 준다. 그런 점에서 스토아학파를 금욕주의라고 칭하기도 한다.
스토아학파 이외의 헬레니즘 시대의 사상적 조류들은 대개 비슷한 경향성을 갖는데, 이는 그 시대가 갖는 특징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펠로폰네소스전쟁 이후 계속되는 戰禍 속에서 계속되는 불안과 안정되지 못한 삶이 주는 긴장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삶을 희구했었으며, 퓌론은 판단이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든 욕망을 불러일으키므로 일체의 판단을 중지하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아무튼 키니코스학파의 전통을 이은 스토아학파는 키니코스학파의 금욕적 전통을 더욱 발전시켜 자연의 섭리에 충실한 삶을 강조하고 있다. 현세를 멸시하면서 냉소적인 삶을 살았던 디오게네스에 비하자면 많은 부분에서 발전적이었다. 문명화된 사회규약과 전통에 대한 부정적인 냉소와 조롱이 아니라, 자연 속에 내재하여 작동하는 원리로서 로고스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긍정적 방법으로 자연에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
反者, 道之動
전통적인 견해를 따르자면, 老子는 현재의 중국 好男省 남부지방인 周나라 태생으로 전하고 있으며 孔子가 그에게 禮를 물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友蘭과 같은 중국철학사가는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다만 여기에서는 老子의 저술로 알려지고 있는 『道德經』을 통해서 老子가 바람직한 삶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에 대한 고찰을 하고자 한다.
老子는 莊子와 더불어 道家思想을 펼친 사람으로 일반적으로 莊子와 더불어서 老莊思想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儒家思想이 중국의 북방적 성격을 대변하는 사상이라면 老莊思想은 중국의 남방적 성격을 보여주는 사상이다. 중국의 북방과 남방은 기후나 자연뿐만 아니라, 문화, 종교, 사상 등의 분야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북방은 기후 등 자연조건이 메마르고 거칠어서 생존을 위한 외부와의 투쟁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고 있었지만, 남방은 온화한 기후조건으로 物産이 풍부하여 생존을 위해 비교적 덜 걱정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북방의 중국인들은 투쟁적이면서도 현세적인데 반해서, 남방의 중국인들은 비교적 온화하고 평화지향적이며 낭만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런 배경에서, 儒家思想은 현실적이라면, 老莊思想은 초현실적 전통을 갖고 있다.
春秋戰國時代에 이르러 諸子百家들이 이른바 百家爭嗚하던 여러 학파의 성향을 대별해서 본다면 둘로 나눌 수 있겠다. 이는 당시의 혼란한 사회에서의 封建制度를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라 하겠다.
儒家와 墨家가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 道家와 法家는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또한 각각은 그 내용이나 성격상 차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유가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권력의 지배관계를 인정하고 그 틀 위에서 봉건제도를 올바른 도덕으로 바로 세우려 하고 있다면, 묵가는 일종의 사회계약설적 입장에서 봉건지배의 기초를 다지려 했다. 아울러, 법가는 인위적인 제도를 정비하고 강화시킴으로써 강력한 독재적 지배관계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도가는 혼란한 세상의 일체를 인위적인 것을 부정함으로써 인간을 모든 불행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無爲自然에 이르고자 한다.
老子의 사상에 있어서 핵심적 개념은 道이다. 道家라는 이름도 거기에서 기원한다. 先秦儒家에서도, 가령 ‘아침에 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論語』, 里仁편)라는 등으로 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老子에서의 道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개념이다.
선진유가에서 사용하는 道는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지켜야할 올바른 道理와 같은 것이지만, 노자의 『道德經』에서 다루고 있는 도는 우주만물을 근원이자, 우주만물이 존재하고 변화하는 攝理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도는 인간의 지혜로는 인지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래서 ‘道라고 표현하면 이미 참된 道가 아닌 것’ (『道德經』,1장)이고, ‘도라는 것의 성격은 황홀하여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道德經』,21장)
道는 이름 붙여질 성격의 것도 아니고, 다만 ‘예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은 사라진 일 없이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주관하는 것이다.’ (『도덕경』,21장)
道는 宇宙의 근원이자 萬物의 生成原理인 것이다. 그렇기에, ‘道는 一을 낳고, 一은 二를 낳고, 二는 三을 낳고, 三은 萬物을 낳았다.’ (『道德經』,42장)
앞에서 道를 황홀한 것으로 이르는데, 황홀하다는 것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것 같고, 변화하는 것 같으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無와 같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天下萬物은 有에서 생겨나는데, 有는 無에서 생겨났다’ (『道德經』,40장) 라고 한다.
한편, 道는 만물을 생성하게 하면서 아울러 변화의 원리가 되기도 한다. ‘사람은 땅을 모범으로 삼고, 땅은 하늘을 모범으로 삼고, 하늘은 道를 모범으로 삼으며, 도는 自然을 모범으로 삼는다.’(『道德經』,25장)라고 하여, 만물의 변화 원리는 道를 본받지만 그것은 완전히 自然의 본 모습으로 그렇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道는 만물의 변화원리로서 작용하면서도, 아무런 作爲도 없이 자연스럽게 저절로 그렇게 된다. 아무런 作爲도 가하지 않고도 그렇게 되는 것을 無爲라 하고, 그러한 상태를 自然이라고 한다. 老子의 無爲自然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도는 언제나 무위하면서도, 하지 않는 일도 없다.’ (『道德經』,37장) 즉, 道는 언제나 無爲하고, 또한 道는 自然을 그 모범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道는 만물의 생성원리로 작용하면서도, 그 작용에 있어 특징을 가지는데 그에 대한 언급이 『道德經』40장에 나오고 있다. 우선, ‘되돌아가는 것이 道의 움직임이다(反者道之動).’ 만물의 변화를 주관하면서도, 변화의 극점에 이르면 언제나 자연의 원상태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멀리 극도에 다다르면 제자리로 돌아가고, 그래서 道가 위대한 것이다.’(『道德經』,25장)
아울러, ‘만물이 아울러 생겨나지만 우리는 그것이 그 근원으로 되돌아감을 본다. 만물은 제각기 번성하고 있으나 그 근원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道德經』,16장) 도의 움직임이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야말로 무위자연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다.
달도 차면 기우는 것과 같이 모든 만물의 변화는 도의 움직임에 따라서 원래대로 회복될 수밖에 없다. 둘째로, ‘약한 것이 도의 작용이다(弱者道之用).’ 원래, 약함이란 강함과 상대되는 개념이다. 도가 황홀하고 분별이 없는 상태인 무의 상태에서는 강함도 약함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有가 생겨나고서야 强弱, 高低, 長短이 구별되는 것이다.
생겨남이 있고 난 뒤에 분별 중에는 강함, 높음, 긴 것 등이 약함, 낮음, 짧은 것에 비해서 적극적인 것이고 선호되기 마련이다. 적극적이면서도, 더 선호된다는 사실은 변화과정에서 극도의 상태에 다다름을 의미하고, 도가 되돌아오는 상태에로 접어든다는 사실은 약함과 같은 소극적인 것으로 회복되어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극적인 것은 극도에 다다른 것을 의미하고, 약함과 같이 소극적인 것은 언제나 발전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군대가 강하면 멸망하고, 나무가 강하면 꺽이어지며’ (『道德經』,76장), ‘억센 자들은 제명에 죽지를 못하는 것이다.’ (『道德經』,42장) 결국에는, ‘부드럽고 약한 것이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道德經』,36장)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부드러운 물줄기가 바위를 뚫기도 하고, 겨울철 밤새 소북이 내린 새털 같은 눈이 크나큰 소나무 가지를 부러트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老子의 사상은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도 우주 속의 자연의 한가지로 파악한다.
老子는 우리가 갖는 아집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스스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자는
밝게 되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는 자는 인정되지 못한다.‘ (『道德經』,24장) 그래서
‘聖人의 도는 일을 이루기는 하되 남과 다투지는 않는다.’ (『道德經』,81장) 라고 하고, ‘聖人은 스스로를 뒤로 미루지만 눈에 띄게 되고, 그의 몸을 가누지 않아도 결국 잘 보존하게 된다. 이는 사사로움이 없어서 그리 되는 것이니 결국 그의 사사로움이 성취되는 것이다.’ (『道德經』,7장) 그리고, ‘만족을 아는 자는 富하고’ (『道德經』,33장),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게 되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게 된다,’ (『道德經』,44장)
결국 老子는 인간에게 있어서도 無爲自然의 삶을 강조한다. 자신의 일체의 허망한 慾望과 作爲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 다다름으로써, 無爲의 상태에서 自然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의 원리인 것이다. ‘聖人은 無爲함으로써 失敗하는 일이 없으며, 執着하는 일이 없으므로 잃는 일도 없다.’ (『道德經』,64장)
老子는 스스로를 일러, ‘나에게는 三寶가 있는데
, 그것은 慈愛로움, 儉素함 그리고 감히 天下에 나서지 않음이다.’(도덕경, 67장) 라고 하여 無爲의 실천사례를 스스로 보여준다.
완전한 無爲의 상태란 자신의 아집과 욕망을 버리고, 나아가서 자신의 의식적 행동과 자신의 好惡마저도 버리는 상태인 것이다. 심지어 老子는 儒家에서 강조하는 仁義와 같은 덕목도 하찮게 여겼다. ‘道를 잃으면 德을 내세우고, 德을 잃으면 仁을 내세우고, 仁을 잃으면 義를 내세우고, 義를 잃으면 禮를 내세운다.
대체로 禮란 忠과 信이 薄弱한데서 생기는 것이고 혼란의 시작이다’ (『道德經』,38장)라고 하여 儒家의 덕목 역시 작위적 분별에서 기인하는 것이요, 참다운 삶이란, 다만 善惡을 초월한 無爲自然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老子는 ‘지혜가 생겨난 뒤로 더 큰 거짓이 생겨났다’ (『道德經』,18장)라고 하여 분별하려는 작위적 행동을 경계하고 있다.
금욕과 만족
스토아학파와 노자가 바람직한 삶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 삶을 한 구절로 표현하자면 금욕과 만족이다.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번민을 하고 있는가?
쇼 윈도우에 가득 찬 풍요를 아이쇼핑하면서 우리의 계산적 이성은 끊임없이 우리를 질책하고 있다.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면서 결코 채울 수 없는 허망한 욕심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질적 가치란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상대적인 것이어서 채우고 또 채워도 끝이 없는 콩쥐의 항아리와 같은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어제 쇼핑한 물건보다, 오늘 쇼 윈도우에서 보게 되는 신상품이 더 좋아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던가? 어쩌면 우리의 감각적 욕망이나 분별심에서 발원하는 욕심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스토아 철학자들이 우리에게 돌아가라는 自然과 老子가 無爲自然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충고는 시대와 공간을 떠나서 스스로가 가질 수 있는 절대적 가치를 희구하라는 충고가 아닐까?
월간 시민시대 2005년 11월 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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