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8백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빈곤 때문에 죽어 가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이후 미국은 테러에 대한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세계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무시해 왔다.
2005년 미국은 4,500억 달러를 군비에 지출했으나 평화를 얻지 못했다. 세계 평화를 뒤흔드는 테러리즘의
온상이 되고 있는 최빈국들의 곤경을 다루는데 미국이 지출한 돈은 고작 150억 달러에 불과하다.
빈곤과 기아와 질병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발전의 사다리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최소한 사다리 아래쪽 계단에 발판을 놓아 스스로 올라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제1장 빈곤은 어디에 있는가
말라위-완벽한 폭풍
방글라데시- 발전의 사다리에서
인도-수출용 서비스 혁명의 중심
중국-풍요의 출현
경제발전의 사다리 올라가기
우리 세대의 가장 큰 비극은 인류의 1/6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발전의 사다리에 아직 발도 올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빈곤한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빈곤 함정에 붙잡혀 있어서 자기 힘만으로는 절대적인 물질적 박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빈곤한 사람의 정의와 분포 지역
극단적 빈곤, 중위의 빈곤, 상대적 빈곤
남아시아의 나라들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대다수 나라가 극단적 빈곤에 처해 있다. 동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에는 중위의 빈곤에 속하는 나라가 많다. 최근 몇십 년 동안 중위의 빈곤에서 벗어난 나라도 많다.
우리 세대의 도전
우리 세대의 도전은 가장 빈곤한 사람들이 극단적 빈곤이라는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 스스로 경제발전의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할 수 있도록 힘껏 도와주는 것이다.
제2장 경제적 번영의 확산
200년 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가난했다.
몇 세기 전에는 부와 빈곤이 전 세계적으로 거대하게 분할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현대적 경제성장의 새로움
1800년경 이후로 지난 2세기를 경제사가인 사이먼 쿠츠네츠는 '현대적 경제성장의 시기'라고 명명했다.
서기 1000년에서 서기 1800년인 800년 동안 1인당 소득은 약 50퍼센트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세계 인구는 단 2세기 만에 6배 이상 증가하여 세 번째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시점에 이르자 61억 명에 도달했다. 세계의 1인당 평균 소득은 더욱 빨리 상승했다. 1820년과 2000년 사이에 평균 소득은 약 9배 증가했다.
1820년에는 모든 지역이 가난했다. 그리고 모든 지역이 경제적 진보를 경험했다. 오늘날의 부유한 지역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더 큰 경제적 진보를 경험했다.
오늘날 부국과 빈국의 간극은 빠른 성장에서 온 것이 아니라 180년이라는(미국)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성장률에서 기인한다. 많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졌기 때문에 부자들이 더욱 부유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세계의 모든 지역이 일정한 경제성장을 경험했지만 일부 지역은 다른 일부 지역 비해 더 높은 성장을 경험했다. 현대적 경제성장의 진짜 이야기는 일부 지역이 총생산을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장기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었던 반면,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라도 정체되었다는 점이다. 착취가 아니라 앞선 기술이 부유한 세계의 소득을 장기적으로 증가시킨 배후요인이었다.
이륙의 전야
산업혁명의 시작과 더불어 변화가 일어났다. 산업혁명의 바탕이 된 것은 북서유럽에서 일어난 농업생산성의 상승이었다. 극적인 도약은 1750년경 영국에서 일어났다.
왜 영국이었을까?
(1.사회가 상대적으로 개방적이었다. 2. 정치적 자유의 제도가 훨씬 강했다. 3. 유럽 과학혁명의 주도적 중심지가 되었다. 4.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었다. 5. 주권을 유지했고 외침의 위험이 훨씬 더 적었다. 6. 석탄이 풍부했다.) 요컨대 영국의 이점은 사회적, 정치적, 지리적 요인들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다.
거대한 전환
산업혁명과 그에 이은 현대적 경제성장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현대적 경제성장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수반되는 것은 도시화다. 농업생산성의 증가와 고밀도 도시 생활이 대다수 비농업 경제활동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경제성장은 사회 계급들 사이의 이동에도 혁명을 낳았다. 또한 성 역할의 변화다. 전통적 사회들은 성 역할에서 강한 차별성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 메카니즘이 변화한다. 생활조건과 경제활동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가족 구조에서도 새로운 현실을 낳는다. 전문화가 증대되었다.
현대적 경제성장의 확산
현대적 경제성장은 서로 다른 장소들에서 매우 다른 속도로 일어났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부와 힘의 상당한 불균형을 창출했다.
영국은 공업화를 주도한 결과 얻은 산업적 지배력 덕분에 유일한 군사적 우위도 확보하게 되었고, 이 군사적 우위는 다시 제국으로 전환되었다.
기술 변화의 폭포
기술진보의 첫번째 파도는 증기 엔진 및 관련 기술의 개발이었다 두번 째는 대양 증기선과 세계적 차원의 교역이 출현했다. 세 번째 파도는 19세기 말에 일어난 산업과 도시 사회의 전화였다. 이런 파도가 무역과 해외 투자의 확산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갔다. 이와 더불어 경제적 번영이 세계의 다른 곳들로 확산되었다.
거대한 분열
제1차세계대전과 볼셰비키혁명과 히틀러의 권력장악과 1930년대의 대공황들, 제2차세계대전...
셰계경제의 재구축
무역장벽을 낮추고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3세계는 자본주의적 셰계와 사회주의적 세계, 제3세계로 나아갔다. 제2세계와 제3세계 나라들 모두 자신들의 경제에 빗장을 지름으로써 전 세계적인 경제적, 기술적 진보에서 차단되었다.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1991년 소련의 종말로 제2세계와 제3세계는 세계경제로 나아가기로 했다.
200년 동안의 현대적 경제성장
생활수준이 200년 전에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높아졌고, 현대적 기술이 전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다만 질병으로 황폐해진 아프리카가 남아있다.
제3장 왜 일부 나라는 번영에 실패하는가
63억 명의 세계 인구 가운데 약 50억 명이 경제발전으로 가는 첫 단계에 도달했다. 평균소득이 증가했고
기대 수명이 증가했다. 2025년에는 극단적 빈곤이 없는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가계소득의 성장
일반적으로 저축, 자본축척, 전문화와 교역 증대, 기술 진보, 천연자원 양의 증가로 가계소득이 향상된다. 반대로 가계소득을 감소시킬 수 있는 것은 저축의 결여, 교역의 부재, 기술적 퇴보, 자연자원의 쇠퇴,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재난,인구 증가이다. 이런 다양한 과정 중에서 어떤 것이 작동하고 작동하지 않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경제개발 전문가의 첫 번째 과업이다.
경제성장의 실패 이유
1.빈곤함정-경제적 정체의 원인
만약 극심하게 곤궁하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든 소득은 물론이고 그 이상을 단지 생존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생존에 필수적인 수준을 넘어 장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2.자연지리
불리한 지리는 영농과 수송뿐만 아니라 건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용을 높임으로써 한 나라를 빈곤 함정에 빠뜨릴 가능성을 크게 만든다.
3.재정적 함정
공공재를 공급하기 위한 재정적 수단이 없을 수 있다. 국민자체가 빈곤하여 과세를 실행 못하고 정부가 무능력하고 부패하여 세수를 거둘 수 없고 이미 무거운 채무를 지고 있어 재원이 투자가 되지 못하고 채무이행에 사용되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 나라가 경제발전의 길로 새로 출발할 수 있도록 돕는 유일한 방법은 부채탕감이다.
4.통치구조의 실패
경제발전은 발전 지향적인 정부를 필요로 한다. 정부가 경제활동을 손상시킬 정도로 부패하거난 국내 평화를 도모하는 데 허점을 드러낼 경우, 경제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
5.문화적 장벽
사회 안에서 문화적, 종교적 규범은 여성의 역할을 방해할 수 있다. 민족적 소수집단에도 적용된다.
6.지정학
외국이 세운 무역 장벽과 강국이 비우호적 정권들에 대해 무역 제재를 가할 수 있다.
7.혁신의 결여
부국들은 보통 시장이 큰데, 이처럼 큰 시장은 혁신을 유인하고 신기술 마케팅을 가능하게 하며 생산성을 더욱 증대시킨다. 빈국에서는 혁신과정이 시작되지도 않는다. 발명가들이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신제품 개발에 드는 막대한 고정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부국들에 개발되는 핵심적 도약 기술이 부국에는 유용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동아시아의 많은 빈국은 초기에 토착적 혁신을 통하는 것보다는 기술력을 갖춘 외국인 투자자 유치를 통해 기술을 육성하는데 성공했다. 세계 어디에서나 그런 과정이 확립될 수 없도록 방해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해안입지의 선호때문이다.
8.인구 함정
빈곤한 가계들은 보통 많은 수의 자녀를 원한다. 이들에게 투자할 여력이 없다. 급속한 인구 증가는 농장 규모와 환경자원에도 큰 부담을 안겨줌으로써 빈곤을 악화시킨다.
성장에 실패한 지역
1980~2000년의 20년 동안 1인당 GDP에 있어 북아메리카와 유럽 또는 동아시아의 부국들 중에서 경제성장에 실패한 곳이 하나도 없다. 문제는 발전도상국에 있다.
성장하는 빈국과 쇠퇴하는 빈국의 차이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은 식량의 생산성인 것으로 보인다.
인구가 많은 빈국이 인구가 적은 빈국보다 더 나아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라틴 아메리카 중소득국들이 번영에 실패한 이유
첫째, 특수한 지리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둘째, 중앙아메리카와 안데스 사회들은 일반적으로는 민족적 노선에 따라 첨예한 사회적 분단을 겪고 있다. 셋째, 자연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외적인 충격에 취약하다. 주요 수출품과 농산물과 광산품 등의 국제 가격이 매우 불안정하다.
경제성장의 한복판에서 계속되는 극단적 빈곤
동일한 공동체 안에 있다 하더라도 절대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은 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중국 서쪽 내륙지역들. 경제성장은 가계들을 부유하게 하지만 정부가 이 성장에 비례하여 사회적 지출을 증대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과세가 이뤄지지 않는다. 또한 정부가 극빈층이 민족적 또는 종교적 소수집단에 속한 경우에 정부는 이들을 무시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원인은 문화적인 것이다. 여성들의 극단적인 차별에 기인한 것에서 부터 많은 원인에 그 이유가 있다.
가장 큰 도전 : 빈곤 함정의 극복
부국들이 빈국들이 사다리에 발을 올려놓도록 도와줘야 한다.
제4장 의학과 경제학의 유사성
오늘날의 개발경제학은 18세기 의학과 닮았다.
나는 개발경제학을 위해 내가 새롭게 제안한 방법을 임상경제학이라고 부른다. 훌륭한 개발경제학과 임상의학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임상의학의 몇 가지, 교훈임상경제학적 측면의 개발경제학
임상경제학과 관련하여 임상의학은 다섯 가지 주요 교훈을 일깨운다.
첫 번째는 인간의 신체(경제)란 복잡한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교훈은 복잡한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 감별 진단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세 번째 교훈은 가족의료라는 점이다. 질병을 치료하려면 사회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네 번째 교훈은 관찰과 평가가 성공적인 치료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다섯 번째 교훈은 의료란 하나의 직업이고, 직업으로서 강한 규범과 윤리 그리고 행동 규칙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잘못된 경제개발 정책들
구조조정 시대의 경제 자문의 실패와 불충분한 개발원조에슨 우선 자문의 이기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이 있었다. 빈곤경감의 책임은 전적으로 빈국 자체에 있는 것으로 가정되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몇몇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정부는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지지받지 못하는 프로그램들을 국제 자문을 통해 피지원국들에 관철시켰다.
빈곤을 줄이기 위한 감별 진단
빈곤 함정, 경제정책 틀, 재정적 틀과 재정 함정, 자연지리, 통치구조 패턴과 실패, 문화적 장벽, 지정학
경제학자에 대한 교육
감별 진단은 과정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제5장 볼리비아의 초인플레이션
안정화 계힉의 설계
구조적 결함-초인플레이션에 대한 완전한 승리
자연지리에 대한 자각
임상경제학의 때 이른 교훈
안정화란 복잡한 과정이다. 거시경제적 도구들은 효력이 제한적이다. 변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기술 관료적 지식, 과감한 정치적 지도력, 광범위한 사회적 참여 등이 결합되어야 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국내의 과감한 개혁뿐만 아니라 외국에서의 금융지원도 필요하다. 빈국들은 정당한 요구를 해야 한다.
제6장 유럽으로 복귀 : 폴란드의 경제개혁
폴란드의 민주혁명
시장경제를 확립하기 위한 계획
사회주의 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계획- 안정화, 자유화, 사유화, 사회안전망, 제도적 조화
폴란드와 볼리비아의 차이점-문맹이 없고 민족적 동질성을 갖춘 사회이며 민족적, 계급적 분열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빈곤하지도 않았다.
계획의 출범
계획에서 행동으로
소비에트 시대이 부채에서 해방
폴란드 개혁에서 얻은 교훈
첫째, 바깥 세계와의 특수한 관계가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규정하는 메커니즘을 어느 때보다 더 깊이 인식했다.
둘째, 폭넓은 경제적 변혁을 위한 기본적인 지도 개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배웠다. 볼리비아에서 지도 개념은 민주주의, 초인플레이션의 종말, 주석과 코카 생산국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생계 수단을 가진 나라로의 발전적인 전환이었고 폴란드는 무엇보다도 유럽 시장으로 복귀하는 일이 시급했다.
셋째, 원대한 구상의 실용적 가능성을 다시 발견했다.
넷째, 어느 경우든지 '아니오'라는 대답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마지막으로 사회가 위기에 깊이 빠졌을 때 정상 궤도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거의 언제나 외부로부터 일정한 도움이 필요하다.
외부 원조는 두 가지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첫째는 경제의 기초 여건을 바로잡는데 필요하다. 둘째는 개혁에 대한 신뢰가 강화하는데 필요하다. 미국은 독립전쟁 동안 프랑스의 지원을 받았고 유럽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광범위한 원조를 받았고 한국도 똑같은 원조를 받았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방대한 금융지원을 받았다. 독일과 폴란드는 부채를 탕감받았다.
제7장 정상의 회복 : 러시아의 투쟁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상당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암거래와 물자부족, 악성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소련의 문제 핵심에는 동유럽에서 일어난 것과 똑같은 사회주의 시스템의 붕괴가 자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위기를 현저하게 악화시킨 직접적인 특징은 첫째, 소련은 거의 전적으로 석유와 가스 수출에 의존하여 외환은 획득했고 둘째, 에너지 집약적인 중공업은 자국에서 생산하는 석유와 가스를 사용하면서 공업 경제를 운영했다는 점이다.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장악하던 시점인 1980년 중반부터 소련은 두 차례의 큰 충격을 받았다. 첫째, 세계 석유 가격이 폭락하여 소련의 수출 소득이 하락했다. 둘째, 소련의 석유 생산이 정점에 달한 다음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소득의 하락과 대외 채무의 증가라는 위기에 깊이 빠졌다.
채권자들은 신규 대부를 중단하고 상환을 요구하고 마침내 경제적 붕괴로 이어졌다.
1990년 휴스턴에서 열린G7 정상회이에 참석여 대규모 금융지원계획에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고
보리스 옐친이 정치적 우위를 획득하였다.
동떨어진 세계
러시이에서서는 정상 상태에서 생활한 적이 있는 사람이 결코 없었다. 그들은 중앙집권적 계획 아래서 살았다. 타개책으로 안정화와 시장 자유화, 사유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하는 것이었다. 또한 외국에서 가능한한 모든 원조를 구하라고 역설했다.
외국의 지원을 확보하려는 시도, 러시아에서 얻은 교훈
15개 국가별로 분리된 통화에 대한 대안-안전화 기금과 기회들을 잃었다. 러시아가 만약 안정화기금, 채무유예, 부채의 부분적 탕감, 실질적인 지원 그로그램 등의 혜택을 받았다면 훨씬 더 쉽게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을 되찾았을 것이다.
러시아의 가장 큰 문제는 천 년 동안 지속된 권위주의로 복귀할 가망성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로 진행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유화 법규 아래 이루어진 국가 자산에 대한 대대적인 도둑질 등 걔혁과정도 심각한 상처를 받고 실패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제8장 500년 만의 따라잡기 : 중국의 재도약
1978년 이래 중국은 시장 방식의 극적인 개혁을 수행했다.
중국은 한 때 선두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1500년에 그만 선두 자리를 잃게 되었다.
중국은 어떻게 선두 자리를 잃었나
중국의 경제사를 살펴보면 몇 개의 시점이 눈에 띈다.
1434년, 1839년, 1937년, 1949년, 1978년이 그것이다. 약 500년에 걸쳐 있는 이 시점들을 이해하면 중국이 세계의 기술적 선도자에서 빈국으로 전락한 과정을 풀 수 있다.
콜룸부스가 아메리카 항로를 발견하고 바스코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에 도착한 직 후인 16세기 초쯤, 중국은 분명히 기술적으로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이었다. 그리고 최소한 천 년 전부터도 틀림없이 그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434년 환관 제독 정화가 이쓴 대양선 선단을 해체했다. 항해 비용과 중국북부 국경지대 유목민의 침임 위협이 증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국을 배를 만들고 먼 바다를 항해하는 기술적 선도자로서의 권리를 다시 누릴 수 없었고 가까운 바다도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내향성과 국제교역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발전을 향한 역동성을 상실했다.1839년 아편전쟁, 1937년 일본의 중국 본토 침공,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978년 덩샤오핑 집권 시장개혁으로 중국의 개방이 시작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본 중국의 이륙
동유럽은 앞을 향해 무조건 저돌적으로 돌진했던 반면, 중국은 민주주의를 전반적으로 유예시키고 경제가 정치적 자유를 더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현명하게 기다렸다는 것이다.
소련은 국유기업에서 거의 일을 했고 중국은 인민공사로 대표되는 농업인구가 기초였다. 중국은 인민공사의 해체로 초기 단계에서 산출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개혁은 도시와 농촌 모두에게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이루어진 중국 개혁이 다음 단계도 역시 신속했고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농민들은 농장을 떠나 향진기업으로 알려진 농촌에 기반을 둔 공장에서 일했고 경제특구로 알려진 특별히 지정된 자유무역지구를 시발점으로 국제무역과 투자가 자유화되었다. 이 지역의 지정은 19세기 중반 중국 경제의 최초 개항지들과 일치했다.
한마디로 경제특구들이 역사적으로 이륙을 시작한 것이다. 국내 저축에서도 투자기금이 조성되었지만, 1990년대는 외국인 직접투자가 점점 더 투자기금의 원천이 되었다. 외국인의 직접투자는 첫째, 유럽과 미국의 공업 및 금융 중심지에서 들어온 원격 국제자본이었다. 둘째, 아시아에 흩어져 사는 중국인 교포들에게서 들어온 자금이었다. 셋째, 왕복자금으로 불리는 국영기업 계좌에 있던 돈이 중국 밖으로 나갔다가 홍콩의 금융 중개기관들을 거쳐 중국 내 기업들에 다시 투자되는 자금이었다.
중국식 점진주의란 농촌 개혁에서는 급진주의를, 대외 무역에서는 신속한 개방을 펼쳐 나갔으나 국영기업 부문에서만 점진적인 개혁을 선택한 것을 뜻한다.
동유럽, 러시아와 중국의 비교
1989년의 동유럽 국가들 또는 1991년의 소련과 중국의 차이는 전자는 자유화시켜 나갈 비국영기업 부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철밥통을 유지했다. 반면 중국은 노동력의 80%가 국영기업 밖에 있었다.
소련과 동유럽 경제와 중국 경제의 다른 점
1. 소련과 동유럽은 대규모 대외 채무를 가지고 있었으나 중국은 없었다.
2. 중국은 수출주도형 성장을 지지할 긴 해안선으로 국제무역에 대한 저비용 접근성을 가지고 있었다.
3. 중국은 해외 중국인 공동체가 있었다.
4. 소련은 개혁이 시작될 시점에 석유 생산의 급격한 하락이 있었으나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5. 소련은 서구와 양립할 수 없는 공업화가 상당히 진전된 상태였으나, 중국은 저급한 기술에 머물러 서구의 규격을 좀더 쉽게 채택할 수 있었다.
중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
1. 중국의 성장이 지리적으로 균일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동서분단(해안 도시들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수송 비용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세계 시장과 가깝다는 이점이 있다.)과 남북분단(북쪽의 물 부족 문제)의 문제점이 있다.
2.시장개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환경적 보호와 관련한 국가부문의 역할에 대한 판단이 난제로 등장한다.(공중보건시스템과 환경보호시스템의 문제점)
3. 결정적인 난제는 정치개혁이다.(내부에서부터 민주화를 향한 강력한 힘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다른 정치 시스템을 필요로 할 것이다. 중국은 거의 2,200년 전 한왕조의 행정기구에서 시스템의 뿌리를 두고 있다. 중앙집권적 국가 이념은 기원전 202년에 통일된 이래 중국의 기본적인 통치 모델이었다.2,000년이 넘는 기간의 성공에소 불구하고 중앙집권적 국가는 힘을 잃었다. 중앙집권적 기구들은 분권적이며 다양한 시장경제 및 시장기반 사회의 역동설과는 양립하지 않는다. 이 역동설은 중국의 정치술에 커다란 긴장을 가하고 있었다.지난 20년 동안 중국이 거둔 경제적 성공은 사회적 이동을 가능하게 하면서 성정부와 지방 정부들로 하여금 나름의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나는 연방제 민주주의 시스템이 가장 유망한 해결책이라고 믿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은 몹시 어려울 것이다.)
역사적 기회
성장경제학자들 사이에 경험론적인 법칙이 있다. 모든 조건이 동일한 경우 부유한 경제와 가난한 경제 사이의 소득 격차는 연간 비율로 살펴볼 때 약 2%로 좁혀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은 더 부유한 나라들이 가난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뒤처진 나라들이 자본과 기술을 동원하여 더 빠른 성장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기 전반기에 중국이 더욱 발전할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2050년 중국이 서유럽 소득 평균의 약 절반 수준에 도달함으로써 상대적인 지위가 공업화시대의 초기 수준으로 회복된다고 가정하더라도 결코 무리는 아닐 것이다.1980년대에 시작되 소련의 개혁과 1990년대 초에 일어난 인도의 변화는 중국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것이다.
제9장 긴 시간에 걸친 희망의 승리 : 인도의 시장개혁
인도는 1991년에 광범위한 시장개혁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영국동인도회사라는 일개 합자회사의 먹잇감이 되었다가 결국 영국에 무릎을 꿇은 것은 인도인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아픔이었다.
인도의 3,000년 역사와 세계와의 관계
인도 원주민(드라비다족)이 중앙아시아의 침략 부족들(높은 신분의 브라만이 됨)에게 침략당했다는 고대 베다의 이야기는 정확하다.
지나친 다양성이 인도의 가장 중요하고도 크나큰 특징이다. 인구의 다수가 힌두족임에도 불구하고 인도 통치자들은 이슬람교도나 기독교도였던 경우가 많았다.
인구가 500만 명에 지나지 않은 조그만 섬나라가 어떻게 인구가 22배나 많은 1억천만 명 이상 되는 제국을 지배할 수 있었는가? 1602년 영국동인도회사가 이 대륙에 도착해 1857년 최종적으로 인도대륙을 정복했다. 영국의 증대하는 산업과 군사적 능력이기도 했지만, 인도의 정치적, 사회적 구조의 심각한 취약성 때문이기도 했다. 무굴제국은 다수의 주권적 계승국가들로 해체되었고 인도의 예외적인 사회적 계층구조와 카스트 위계질서 강한 사회적 응집력가 동지 의식이 없는 나라의 취약성을 갖고 있었다.
영국의 지배와 경제적 유산
독립과 경제적 선택
국제무역과 외국인 투자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과 사회분열이었다. 네루는 강력한 국가 통제 시스템을 선택했다.
개혁의 시작
만모한 싱의 등장, 국제무역과 투자에 방해가 되는 관료적 제한을 끝내는 일에 착수했다.
인도가 IT산업에서 두드러진 경쟁력을 갖추게 된 근본적 요인은 첫째, 한 세대 이상 동안 인도기술학교(ITT)출신의 고급 기업가와 기술자들을 배출했고 인도의 정체된 경제 때문에 이들 상당수가 미국으로 이주 1990년대 중반에 이 업계의 지도자들이 되어 있었다. 둘째, 해외에 거주하는 인도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인도와 사업관계를 확립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크게 촉진한 것이 새로운 정보기술이었다. 인도는 네 단계의 정장 경로를 거쳤다. 영국지배 아래의 저성장, 네루의 정부 허가체제 아래의 저성장, 녹색혁명의 출현과 더불어 나타난 고성장, 1990년대 시장 자유화가 그것이다.
경제적 문제
개혁의 확대, 세계 시장과의 통합심화를 위한 기초 인프라의 투자, 보건과 교육에 더 많은 투자, 인프라와 사회적 투자를 위한 비용의 조달등의 문제.
인도가 비록 경제 현대화의 깊이와 넓이라는 측면에서는 중국에 미치지 못했지만, 중국이 가진 문제점들, 즉 다른 민족들간의 충돌, 지역적 불평등, 대규모 이주, 광범위한 부패라는 강력한 긴장이 없다.
발전의 연대
인도의 성장은 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농촌의 상대적 저성장을 끌어올리는 문제
인도에서 얻은 교훈
녹색혁명과 그 이후의 시장개혁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느린 성장을 극복했다. 인도가 새로운 IT가능성들을 활용할 능력을 갖게 된 것은 인도기술학교에 대한 장기적 투자 결과였다.
농촌 주도형 성장은 비교적 단기적인 것이었다. 도시 기반 제조업과 서비스없이 발전의 길을 이끌었다.
제10장 소리 없는 죽음 : 아프리카의 질병
누가 감히 아프리카의 통치구조를 비판하는가
16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300년이 넘게 노예무역이 행해졌으며, 이어 1세기 동안 야만적인 식민지 통치가 이루어졌다. 신생 독립국들의 국경선은 옛 제국들의 자의적인 경계선을 따라 그어졌고, 동시에 민족집단, 생태계, 자원 매장지 등도 자의적으로 분할되었다.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정치적 위기-수단과 소말리아를 비롯한 기타 수많은 나라에서 일어난-에는 많은 원인이 있었지만 그 한복판에는 언제나 서구가 오랫동안 개입해 온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빈곤의 뿌리 깊은 원인
지난 10년 동안 가나, 말라위, 말리, 세네갈 등과 같이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통치가 잘된 나라들이 번영에 실패한 반며, 방글라데시, 인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처럼 광범위한 부패를 안고 있다고 인식한 아시아 사회들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경제성장의 적 : 질병
빈곤과 질병에 대한 투쟁이 재산의 사유화나 예산 적자 또는 무역정책에 대한 선택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곳에서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말라리아 미스터리
말라리아는 완전히 치료될 수 있지만 해마다 약 3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이런 희생의 압도적인 부분이 아프리카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저비용 치료법이 존재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말라리아에 대해서 아프리카는 정말로 불운한 땅이다. 높은 온도, 풍부한 서식지, 가축보다 인간의 피를 더 좋아하는 모기 등 모든 요인을 갖고 있다. 충격적이게도 말라리아에 대한 투쟁가 관련하여 선진국들이 아프리카에 지원한 수준은 아주 미미했다. 해마다 20~30억 달러가 필요한데 지원금액은 고작 수천만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AIDS 대홍수, 세계 AIDS, 결핵, 말라리아 퇴치기금의 탄생
아프리카에서 얻은 교훈
아프리카에 대한 인종 차별주의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그들은 빈곤, 질병, 생태위기, 지정학적 무관심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직면해 있다. 아프리카의 불리한 지리와 극단적 빈곤의 결합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빈곤 함정을 창출했다. 현지의 필요성 및 상황과 잘 조율된 투자들이 결합될 경우 아프리카 경제의 빈곤 함정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다.
제11장 이라크 전쟁이냐, 빈곤의 퇴치냐
2000년 9월 열린 밀레니엄 유엔총회에 8개 항의 밀레니엄발전목표가 정립되었다.
그러나 9.11이후에 일어난 것이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9..11일 세계무역센터에서 거의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아무 죄 없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지만, 아프리카에서도 AIDS와 말라리아와 결핵으로 날마다 1만 명이다 되는 사람이 소중한 목숨을 잃는다. 우리는 9.11을 냉철하고 올바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는 우리가 하루 1만여 명의 무고한 죽음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테러리즘은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을 가지고 있으며, 군사적 수단만으로는 충분히 대응할 수 없다. 테러리즘과 싸우려면 빈곤이나 결핍과도 싸워야 한다. 전 세계적 번영에 참여하지 못하고 세계 경제의 주변에 머물게 되었으며, 부국에 잘못 이용다함-중동의 산유국들처럼-으로써 희망이 사라진 사회들 안에 웅크리고 있는 테러리즘의 뿌리를 더 심도 있게 다뤘어야 했다.
마샬플렌이 한창일 따ㅐ는 미국의 대외원조가 GNP의 2%이상이었던 데 비해 오늘날에는 0.2%도 채 안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3년 3월 20일 이라크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제12장 빈곤 종말을 위한 현장 해결책
빈국에 남아 있는 핵심적인 문제는 게으름과 부패를 극복하는 일이 아니라 지리적 고립성, 질병, 기후 충격으로 나타나는 취약함 등을 적절하게 다루는 일이다. 또 정치적 책임감을 가지고 이 과제를 해낼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2025년에 극단적 빈곤을 끝내기 위한 전략을 개괄적으로 제시해 놓았다. 그 전략은 도시건 농촌이건 전 세계의 빈곤한 공동체들에게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수단을 제공할 수 있는 핵심적인 투자-사람과 인프라 기반에 대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는 계획, 시스템, 상호 책임성, 재원조달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농촌 빈민들과의 만남 : 케냐의 사우리
농업투입물, 공중보건투자, 교육투자, 동력.수송.통신 서비스, 안전한 식수와 위생.
국제 기부자들과 사우리 같은 마을
국제 사회가 케냐에 필요한 예산을 예산을 지원하기보다는 오히려 갉아먹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위와 같은 5가지 프로젝트를 위해 훨씬 더 많은 개발원조가 필요하고 부국이 더 많은 부채를 탕감해 줄 필요가 있다.
도시 빈민과의 만남 : 인도 뭄바이
사우리 마을처럼 이 공동체에 필요한 것은 인적 자본과 기초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통해 사람들의 건강과 교양은 물론 작업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다.
규모의 문제
가난한 사람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부여하는 통제 시스템을 포함하여, 가난을 끝낼 수 있는 투자를 증가시킬 전략이 필요하다.
제13장 빈곤에서 자본축적으로 가는 선순환
극단적 빈민들에게는 다음 여섯 가지 주요 자본이 필요하다.
1.인적 자본-사람의 건강, 영양, 기술을 말한다.
2.사업 자본-농업,공업,서비스업에서 사용되는 기계,설비, 동력 수송수단을 말한다.
3.인프라
4.자연 자본
5.공공제적 자본-상법,사법제도, 정부 서비스와 경찰을 말한다.
6.지식 자본-과학적 노하우를 말한다.
빈곤 함정의 작동방식과 빈곤 함정의 해결에서 해외 원조의 역할
공적개발원조의 형태를 띤 외국의 원조가 자본축적, 경제성장, 가계소득 증가 등의 과정이 도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치에 의한 예시-빈곤 함정 타파의 핵심은 기부자의 원조를 바탕으로 한 표적 투자에 있다.
감별 진단과 자본축적-위의 5개 종류의 투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정부는 왜 학교, 진료소, 도로 등을 민간부문에 맡기지 않고 직접 투자해야 하는가?
1.자본투자가 민간부문에 맡겨진다면 독점체들이 사용료를 과도하게 부과할 것이고 그 결과 이런 종류의 자본은 너무 적게 이용될 것이다.
2.공적으로 공급되는 자본재 범주에는 비경합적 자본재가 포함된다.
3.많은 사회적 부문에서 강한 일출 효과를 나타낸다. 나는 당신이 말라리아 방제 모기장에서 잠을 자서 모기가 당신을 물지 않고 또 나에게 그 질병을 옮기지 않기를 원한다.
4.필수 재화와 서비스(보건,교육,안전한 식수) 가능성(가용성) 문제다.
5.정부는 인프라 공급과 사회적 투자를 통해 극빈자들을 도우려고 할 것이다. 정부가 사업을 운영하는 것은 경제적 이유보다 정치적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투자가 패키지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
빈곤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각각의 자본이 모두 필요하다.
기술 역량에 대한 투자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려면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사회 전체에 기술적 역량이 충만해야 한다. 특히 두뇌유출이라는 강력한 흐름에 맞서야 한다.
빈곤에서 승리한 사례
1.아시아의 녹색혁명-멕시코의 곡물생산, 인도, 필리핀의 쌀생산
2.천연두 퇴치 3.아동 생존 캠페인 4.세계 백신, 예방접종 캠페인 5.말라리아 퇴치 캠페인
6.아프리카의 하천실명증에 대한 통제(회선사상충증) 7.소아마비 퇴치 8.가족계획 확대
9.동아시아 수출가공지구 10.방글라데시의 이동전화 혁명-그래민은행,그래민텔레콤
제14장 빈곤 극복을 위한 전 지구적 협정
2025년 전 지구적 빈곤을 끝내기 위해서는 부국과 빈국 사이의 전 지구적 협정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모든 나라들이 다함께 참여하는 일치된 행동이 필요하다.
그림자 연극, 협정의 두 당사자,성공을 위한 설계,목표와 실천의 괴리 현상,밀레니엄발전목표에 기반한 빈곤경감전략
진정한 밀레니엄발전목표에 기반을 둔 빈곤경감전략은 5개부분으로 구성될 것이다.
1.감별 진단 2.투자계 3.재정계획 4.기부자계획 5.공공관리계획
재정계획과 밀레니엄발전목표 재정의 갭
투자계획이 지속 가능하려면 기부자들의 재정지원이 최소한 향후 10년 그리고 최대한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기부자 계획-규모, 시점, 예측 가능성, 조화
공공관리계획-분권화, 훈련, 정보기술, 측정 가능한 지표들 감사, 관찰과 평가
지역 수준의 인프라
많은 중요한 투자가 지역적 성격을 띠고 있고, 한 번에 여러 나라와 관련된다.
빈곤경감을 위한 전 지구적 정책
1.채무 위기-마샬플랜을 보면 무상원조로 유럽 재건을 돕기로 했다. 사실 부국들은 빈국들이 애초에 채부를 지지 않도록 대부가 아니라 무상원조를 제공했어야 한다.
2.전 지구적 무역정책-부국들의 무역 장벽이 빈국들의 수출 정장을 가로막고 있다.
3.발전을 위한 과학
4.환경관리
국제 시스템의 운영 주체
20년 동안 부국들은 다른 유엔 기구들에 비해 IMF와 세계은행에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했다. 1국 1표제로 운영되는 유엔 총회 및 대부분의 전문기구 이사회들과는 달리 IMF와 세계은행의 각 회원국은 1달러 1표제가 적용되어 부국들은 다수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전문적인 유엔 기구들과 IMF와 세계은행 사이의 좀더 긴밀한 협조 없이는 어느 기구도 맡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다음 단계
극단적 빈곤은 함정이지만 이 함정은 표적 투자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제15장 세상을 가치 있게 만드는 계산법
부국이 이미 공약한 한도안에서 그 과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 국민 총생산의 0.7퍼센트만 할애하면 충분하다. 실제로 부국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1퍼센트도 안되는 것을 가지고 문제 삼고 있을 뿐이다.
부자들에게 요구되는 기부가 왜 지나치지 않은지를 알 수 있는 다섯 가지 중요한 이유
1. 극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수가 감소하여 세계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오늘날 약 11억명이 극단적 빈곤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1/5에 약간 못 미치는 수치다. 두 세대 전에는 거의 절반에 가까웠다.
2.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극단적 빈곤을 끝내자는 것이지 모든 빈곤을 끝내자는 것은 아니다.
3.빈곤 함정을 끝내는 것은 생각보다 훨신 더 쉬울 수 있다. 우리가 실천적 특정한 영역의 투자들에 대해 말한다면, 그 과제는 훨씬 더 쉬워 보일 것이다.
4.비용에 있어 부국의 엄청나게 늘어난 소득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5.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다.-이동전화, 인터넷, 물류 시스템, 육종 개량, 농생물기술, 과학적 영양관리 등
간단한 계산, 필요금액의 산정 방법, 기본적인 욕구 패키지, 투자 비용 분담
일반적으로 중소득국은 그들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저소득국들이 2015년에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최소한 조금이라도 원조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필요한 공적개발원조의 총액, 여러 필요액의 산정방식들 간이 비교, 어떤 기부자드링 부담해야 하는가
대외원조금액의 총 증가분 중에서 51퍼센트는 미국에서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기부국 명단에서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2015년 이후의 비용
부국들은 더욱 부유해지고 세계 인구 가운데 극단적으로 빈곤한 인구 비율은 계속 하락할 것이다.
미국은 GNP의 0.7%를 낼 수 있을까
2000년도 미국의 400명 최상위 소득은 690억달러이었다. 이는 보츠와나, 나이지리아, 세네갈, 우간다의 합계 소득 570억달러보다 더 많은 액수였다. 이들 소득의 10퍼센트만 기부한다해도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제16장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그릇된 처방
아프리카는 빈곤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마다 약 300억 달러의 원조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필요한 원조를 실제로 제공한다면, 그것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낮은 교육수준, 만연한 부패, 자유시장 경제제도와 근대적 가치의 결여, 낮은 도덕율, 이들을 구원하면 곧 인구폭발이 일어나 새로운 기아에 직면할 것이다. 이는 편견이다. 세계의 다른 지역들도 경제발전을 달성하기 전에는 똑같은 편견의 대상이었다. 나폴레옹은 "역사란 종종 꾸며낸 거짓말"이라 했다.
낭비되는 돈
2002년에 미국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1인당 3달러를 제공했다. 미국인 컨설턴트들의 몫과 식량및 기타 긴급 원조, 행정 비용, 부채탕감 활동 등에 필요한 비용을 빼면 현지에 도달한 원조 금액은 1인당 총 6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아프리카 원조에 대해 보여 줄 내용이 별로 없다는 것도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 원조 프로그램에 대한 비관주의
아프리카를 위한 주장은 먼저 산더미 같은 편견과 의심을 벗겨내야만 비로소 받아들여질 것이다.
부패가 용의자
아프리카의 성장 자체에 부패와 취약한 통치구조가 끼친 원인과 결과에 대한 역할을 심각하게 과대평가하는 일이다. 훌륭한 통치구조가 소득을 상승시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높은 소득이 통치구조의 개선을 낳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부재
민주주의에서 경제적 성과로 이어지는 연관성은 상대적으로 약하다ㅏ. 즉 아프리카가 민주화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경제적으로 상승한다는 것은 아니다.
근대적 가치의 결여
아프리카의 빈곤을 일하기 싫어하는 습성, 개인주의에 대한 억압, 비합리성 탓으로 분석했다. 문화의 관점에서 사회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설득력이 빈약할 뿐만 아니라 틀린 경우도 많다. 문화적 해석에 따른 주장들은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문화란 경제적인 시대상황과 함께 변화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것들이 보통 측정 가능한 증거가 아니라 편견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경제적 자유라는 만병통치약
경제적 자유가 경제발젼에 플러스 요인인 것은 확실하지만 결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자본의 미스터리?
또 다른 편견들-도덕의 부족? 아이들을 구하면 성인의 기아가 늘어나는가 밀물이 모든 배를 밀어 올린다.
이빨과 발톱에 피를 묻힌 자연
현실의 삶이란 테니슨의 명언처럼 이빨과 발톱에 피를 묻힌 자연과 경쟁, 투쟁하는 것이다. 사회다윈주의는 경제적 진보란 경쟁과 적자생존에 대한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결국 삶은 투쟁이고 오늘날 세계는 그 투쟁의 결과를 반영한다.
행동을 위한 제안
제17장 초일류국가 미국의 편견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자국의 안보와 중요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 군대를 더 믿는다. 미국은 대외원조보다 군대에 30배나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국제 관계에 대한 다른 접근 방식을 배제하고 오직 군대를 강화하기로 한 미국의 투자결정은 잘못된 여러 가지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1.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는 생각이다. 가난한 나라 농부들의 식량 생산 증대를 돕기 위한 미국의 원조금액은 연간 10억 달러도 채 안된다. 이는 위기에 빠지 개인들을 부양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불안정하고 불충분한 식량 생산의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2. 미국 군대가 불안정한 세계에서 미국인들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다. 테러리스트들의 활동무대는 빈곤과 실업, 급속한 인구 증가, 기아, 희망의 결여 등으로 포위된 불안정한 사회들이다.
3.세계가 서로 다른 문명들 간의 전쟁에 돌입하고 있다고 믿는 문명충돌론이다. 아주 많은 일들이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은 성서에서 예언한 종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는다. 미국인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 기울이고 있는 노력이 사실 얼마나 미미한가 하는 점이다.
미국의 안보와 지구적 빈곤
국가 실패 사례에서 다음의 세 가지가 아주 중요한 내용들이다.
1.유아 사망률 2.경제의 개방성 3.민주주의
해외의 국가 실패는 미국의 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9.11사건 이전과 이후의 원조정책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은 원조 흐름이 대규모였던 적도 없고 경제성장을 자극하기에 필요한 수준의 규모를 갖추었던 적이 결코 없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결과였다.이러한 괴리는 부분적으로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행동
대외정책의 균형 회복
마샬플랜-마샬플랜은 인도주의적 사명을 넘어 전후 시대 유럽의 경제적, 전략적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포괄적인 경제개발 계획이었다.
주빌리 2000(부채경감 캠페인), AIDS 퇴치를 위한 긴급 계획, 우리 세대의 역할을 요청할 시점
제18장 우리 시대의 도전
우리 세대는 2세기 반 동안 이루어진 경제적 번영의 상속자다. 우리는 2025년에 극단적 빈곤이 없는 세계가 실현되리라는 현실적인 전망을 할 수 있다. 토머스 맬서스의 어두운 전망과는 반대로 세계 인구가 1750년과 비교했을 때, 현재 8배난 많아졌지만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달성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의 경제적 힘이 지난 250년간 달성한 경제 성장의 산물이라면, 경제적, 사회적 진보에 관한 우리의 개념은 산업혁명과 거의 같은 시점에 출현한 사회철학의 산물이다. 유럽에서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였고, 바로 이 시기에 사회진보에 관한 새 개념이 도입되었다. 계몽주의의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포괄적인 사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1.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미국 공화국의 건설자들은 존 로크와 테이비드 흄 같은 영국 정치철학을 이어받아, 정치제도들이란 인간이 사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만들어 갈 인위적 구축물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2. 애덤 스미스는 경제 시스템이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3. 독일의 위해한 계몽주의 철학자인 이마누엘 칸트는 인간 진보에 관한 현대적 개념의 기초에 세 번째 항목을 추가했다. 전쟁이라는 오래된 사회악을 끝내기 위한 적절한 전 지구적 통치 시스템을 요구했다. 4. 계몽주의의 포괄적인 비전 중 마지막은 인위적 정치시스템에 대한 제퍼슨의 전망, 스미스의 합리적으로 설계된 경제 시스템, 칸트의 전 세계적인 영원한 평화 체제를 결합시킨다.
우리 세대의 방향 전환
1.피통치자들의 합의에 기반을 두고 인간 복지를 향상시킬 정치 시스템을 조성해 나간다.
2.과학, 기술, 분업의 편익을 세계 모든 곳으로 확산시킬 경제 시스템을 조성해 나간다.
3.영구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 국제협력을 조성해 나간다.
4.인간적 합리성에 기반을 두고 인간 조건의 지속적인 개선 전망을 가열시킬 과학과 기술을 향상시켜 나간다.
반지구화 운동과 그 한계
반지구화 운동을 촉진한 것은 정당한 도덕적 분노였다. 그러나 이 운동이 목표로 삼은 것은 종종 피상적인 내용들이었다. 즉 반기업적 적개심이 운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부유한 기업들의 착취 영역에서 가난한 나라들을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반지구화 운동 지도자들은 올바른 도덕적 열정과 윤리적 관점을 지니고 있지만 문제를 발생시킨 더 깊은 뿌리에 대해 잘못 진단하고 있다. 여러 차례 반복하여 지적했듯이 아프리카 문제는 전 지구적 투자자들에 의한 착취가 아니라 경제적 고립 때문에 발생했다. 즉 문제의 원인은 아프리카 대륙에 지구화의 힘이 전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기업적, 반무역적 태도는 자본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많은 시위자들이 다음과 같은 점을 미쳐 모르고 있다. 1. 애덤 스미스조차 시위자들과 비슷한 도덕적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사회 시스템 개선에 대한 실천을 요구했다는 점이다.2. 무역과 투자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빈민들의 충족되지 않은 욕구와 환경문제를 다루기 위한 국가 주도적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계몽된 지구화를 향하여
반지구화 운동은 지구화를 통해 극빈자들의 기본적인 욕구 총족과 지구환경 그리고 민주주의 확산 등의 문제가 올바로 다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이를 이루려면 결국 친지구화 운동에 거대한 헌신과 도덕적 힘을 모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계몽주의가 옹호하는 지구화다.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두 가지 기본적인 점을 오해한다.
1. 미국의 세계 인구 비중은 4.5퍼센트에 지나지 않지만 구매력 평가로 측정된 소득 비중은 약 20퍼센트다. 2050년에 인구 비중은 약간 떨어지겠지만 GNP 비중은 좀더 급격히 낮아져 아마 10퍼센트 수준에 머무를 것이다. 미국은 전 세계적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행도을 시도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경제적 우위를 갖고 있지 않다.
2. 미국은 막대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힘의 정치적 유용성은 별로 크지 않다. 이라크 전쟁이 실제로 증명해 주었듯이 미국은 정복자일 수는 있지만 통치자일 수는 없다.
세 차례의 도전과 승리
노예제도의 종말,식민주의의 종말, 민권 운동과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
우리 세대의 다음 조치
1.빈곤 종말에 대한 약속 2. 행동계획의 채택 3.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 높이기 4. 세계에서 미국 역할의 회복 5. IMF와 세계은행의 구출 6. 국제연합의 강화 7. 세계적 과학의 활용 8. 지속 가능한 개발의 촉진 9. 개인적 수준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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