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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나라 천연유약의 신비

美人完成 2008. 11. 29. 01:31

우리나라 천연유약의 신비

 

 

‘도자기의 피부, 유약의 신비’ 편에서 유약은 도자기 표면에 발린 유리질을 말하며 이 유약은 불을 때던 중 장작의 재가 기물에 앉아 녹는 것을 보고 중국인이 발견했고, 그 뒤 유약은 비약적으로 발전 했으며,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들어온 유약 기법을 더욱 발전시켜 비색(翡色) 청자를 빚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유약을 만드는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동서양이 다릅니다. 먼저 유약을 만드는 방법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도자기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동양(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도자기를 자연의 일부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도자기를 만드는 원료를 자연계에서 존재하는 천연소재를 사용하여 오랜 경험을 통한 사기장의 예술적 감각을 통해 도자기가 완성하였습니다.

유약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산에 있는 돌(장석 또는 규석 혹은 도석)을 찾아 이것을 물레방아나 연자방아로 분쇄해 식목의 불에 태운 재를 섞어 유약을 만들었고, 불을 땔때도 산에서 구한 나무를 말려서 장작으로 만들어 불을 때 도자기를 빚었습니다.

그 중 우리나라의 유약 만드는 방법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른 방법이 있었습니다.(마지막 부분 참조)

우리나라 도자기는 형태 자체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단순하게 보였으나 자연미를 최대한 살린 편안한 도자기였습니다.

▲ (좌) 분청철화장군병 - 아타카 콜렉션(중) 중국분체묘금태첩발라문병 - 대북 고궁 박물관(우) 일본 백자색회육각면취병 - 산토리 미술관
ⓒ 본문참조
그러나 서양에서는 도자기가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서양에서는 18세기 전까지는 동양의 도자기는 금보다 더 비쌌고,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당시 유럽은 마치 중세에 연금술사가 금을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것처럼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서양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700년경부터 도기가 아닌 도자기가 시작됩니다.

▲ 1880년 마이센에서 제작한 꽃병. 출처 - 유혹하는 유럽도자기 /김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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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년에 독일 마이센요에서 한 연금술사가 처음으로 백자를 만듭니다. 그러나 이 백자는 동양의 단단한 경질 자기가 아닌 연질 자기였습니다.

그 뒤 1760년 잉글랜드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화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이때 도자기 유약의 화학적 연구가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천연의 원료를 화학적으로 분석하여 특정성분을 유출 분리하여 순도를 높인 원료를 사용하여 유약을 조합하는 방법이 발견됩니다. 이것이 인공원료 즉 화학원료 유약의 시작입니다.

이때부터 서양은 개성이 없고 똑같은 도자기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갖게 됩니다. 이 기술이 다시 동양으로 수입된 것이 바로 현대의 요업입니다.

▲ 18세기 조선 청화 백자.
ⓒ 아타카 콜렉션

동양의 전통 유약은 자연 친화적이나 유약의 재료가 되는 천연물질의 상태(예-나무의 성장 환경에 따라 재의 성분 물질의 비율이 달라짐)에 따라 사기장의 의도와 다른 도자기가 탄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획일적인 대량생산에는 아주 불리하나 작품 하나하나의 예술적 가치는 뛰어납니다.

동서양의 도자기에 대한 인식을 간단히 요약하면 동양은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면 서양은 도자기를 과학적 결과 물로 바라봅니다.

결론적으로 동양의 유약은 돌과 나무재 즉, 천연재료의 결합이고, 서양의 유약은 광물과 광물을 화학적으로 처리하여 만듭니다.



 

▲ (좌)청화백자 보상당초문화백자 -아타카콜렉션 -> 1994년 크리스티 경매장 원화로 50억 상당 세계 2위의 금액으로 낙찰(우)백자 청화운용문호 - 중앙 박물관 소장-> 이것과 비슷한 것이 1996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원화로 110억 상당으로 낙찰
ⓒ 본문참조
동서양의 도자기의 예술적 가치를 경제적으로 평가하면, 세계의 고미술 시장에서는(소더비, 크리스티 경매) 한국의 옛 도자기가 최고 비싸고, 그 다음으로 중국, 일본 그리고 유럽의 도자기 순입니다.

이것은 획일적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서양의 도자기 보다 자연 친화적인 동양의 도자기가 예술적 가치가 더 있다는 말입니다.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옛날 우리나라의 유약 만드는 방법은 중국, 일본과는 달랐습니다. 물론 중국과 일본처럼 돌(장석, 도석)을 물레방아로 분쇄해 재를 섞어 유약을 만들었습니다만, 그것 보다는 물토라는 천연물질에 재를 섞은 것이 우리나라의 옛 도자기의 유약이었습니다.

▲ 물토 – 수토, 수을토라고도 불린다
ⓒ 양영훈
그러면 물토는 무엇일까요?

옛 문헌에는 水土, 水乙土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석, 석회석, 규석 등이 주성분으로 손으로 만지면 딱딱한 돌덩어리가 부드러운 가루처럼 분쇄됩니다. 이 가루를 물에 타면 미숫가루처럼 그대로 풀어집니다.

이 물토 중 산화철이 함유되어 붉은 빛을 띤 물토는 청자유약에, 산화철 함유량이 적고 흰색을 띠는 것은 분청이나 백자 유약으로 사용했다고 추정됩니다.

그리고 이 물토를 도자기 태토에 섞어주면 완성된 도자기가 단단하게 되므로 태토에 섞기도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물토에 융재인 나무 재 대신 광물질 융재인 활석이나 석회석을 섞기도 했습니다. (분원도자기의 사금파리성분 분석결과) 그리고 우리 전통유에는 물토유 외에 여러 다양한 유약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조상들 사용한 물토, 나무재 그리고 약토등 천연물질을 자연에서 구해 정성으로 유약을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유약을 만들까요?

우리나라 전통유를 근원으로 하여 유약을 만들어 옛 우리 도자의 화려한 영광을 되찾으려는 사기장도 많으나, 간단하고 편한 서양식 유약 제조 방법으로 유약을 만드는 사기장도 많습니다.

▲ 필자가 여러 종류의 나무재를 이용해 개발한 회령 백유.신한균 작
ⓒ 신한균
그리고 도자기를 가르치는 대학이나 학원에서는 한국적 유약 만드는 기법보다는 서양적 유약 만드는 기법만을 가르치다 보니 우리의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전통유약은 점점 우리나라 도자 문화에서 멀리 떨어지고 있습니다.

온고지신(溫故之新)이라 하지 않았던가?
옛것을 알고 새것을 배워야지 새것(서양식 유약)을 알고 우리의 옛 (한국전통유)을 안다면 16세기까지 세계 최고의 도예 왕국이었던 우리나라의 옛 영광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2004-05-08 21:15 ⓒ 2007 OhmyNews

출처 : 내장산제다원
글쓴이 : 심산 박동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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