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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도자기의 피부, 유약의 신비

美人完成 2008. 11. 29. 01:34

도자기의 피부, 유약의 신비

 

 
▲ 고려 청자 양각 죽순형 주전자.
ⓒ 아티카 콜렉션
고려 시대 말, 몽고족의 침략은 서해 바닷가에서 청자를 빚던 사기장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 침략으로 청자를 빚던 우리 나라는 그 맥이 끊어지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청자를 지키고자 했던 마지막 사기장이 있었습니다. 그 사기장 얘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그 사기장에게는 결혼한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에게 배운 기술만 믿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 늙은 아버지와 부인을 남겨놓고 요절했습니다. 홀로 남은 그 부인은 늙은 시아버지 밑에서 청자 빚는 일을 도우면서 며느리로서의 소임을 다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청자 만드는 기술을 거의 다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하나, 청자의 유약 만드는 비법은 알 수 없었습니다. 시아버지는 여자가 사기장이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 유약의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고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그 이후로는 우리 나라에서 고려 청자가 단절됐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도자기에 있어서 유약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약. 유약은 도자기의 표면에 바르는 유리질을 가리킵니다. 도자기를 만드는 흙인 '태토'가 몸과 살이라면 '유약'은 피부입니다. 그래서 유약이 이쁘게 발린 도자기를 보면 "이 도자기 피부가 곱다"고 말합니다.

▲ (좌)물레로 형태를 만든 뒤 초벌구이 상태 (중)초벌구이 상태인 기물에 유약을 입힌 뒤 건조한 상태 (우)유약을 입힌 기물을 가마에 넣어 불을 때 완성된 상태
ⓒ 신한균
유약을 논하기 전에 먼저 도자기 역사를 살펴 보겠습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만든 도자기는 1만2천년 전의 '도기'('토기'는 일본식 표현)입니다. 이 도기는 유약 없이 점토로 형을 만든 뒤 낮은 온도로 가마(도자기를 넣고 불 때는 시설)없이 노천에서 불을 때 익힌 것입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죠오몬 토기'라 불려지는 일본 도기입니다.

▲ (좌)죠오몬 도기. 일본 진남정 교육 위원회 (우)이집트 청유 도기. 루브루 미술관
사실 도기는 연대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 각지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유약을 입힌 도기는 6000년쯤 이집트 왕의 고분에서 발견된 청록색 사금파리(깨어진 도자기 파편)가 최초입니다. 이것은 저화도(500~600도, 800도 이하는 저온으로 분류합니다) 유약이 입혀진 도기였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유약이라 부르는 고온유는 1200도 이상의 온도에서 도자기(도기+고화도 자기)의 표면에 달라붙는 유리질을 말합니다. 이 고온유는 청동기를 제작하는 기술을 가진 고대 중국 사람들이 발견했습니다. 도자기를 만들 때는 열을 가하기 위해서 '가마'라는 시설이 필요합니다. 1200도까지 온도를 올린다는 것은 고화도를 견디는 가마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옛날 중국에서 사기장(도공은 일본식 표현)이 고화도의 도기를 만들기 위해 가마에서 불을 때던 중 장작의 재가 도기의 표면에 내려앉아 아름답게 빛나는 것을 보고 발견한 것이 '재유(회유)'입니다. 이것이 고온유의 시작이었습니다.

▲ 비젠야끼라 불리는 자연유사발. 후지와라 유 작품
ⓒ 후지와라 유
그런데 이 '재유'를 '자연유'라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유약 없이 기물을 가마에 넣어 소나무 장작으로 아주 오랫동안 아주 높은 온도(1300도 이상)로 불을 때면 소나무 장작의 재가 가마 속에서 자연적으로 달라붙어 마치 유약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유입니다.

일본에서는 이 자연유를 아주 귀한 도자기로 여깁니다. 이 기법은 신라 토기를 빚던 우리 나라 옛 사기장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 가르친 기술입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인들은 자기네들의 전통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재유는 나무재에 다른 성분(융재)을 섞어 유약을 기물에 입힌 뒤 가마에 넣어 불을 때서 유약을 유리처럼 맑게 녹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 재유를 근간으로 하여 재유의 주성분인 나무재에다 여러 종류의 융재(예를 들면 장석, 도석, 석회석)를 섞으면 다양한 유약이 나오게 됩니다. 현대에는 장석, 규석을 근간으로 하지만 나무재나 석회석 또는 대리석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고온 유약인 재유의 발견 이후에 중국에서 도자기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기원 전 1, 2세기 무렵, 후한 시대에 개업한 월주요를 시작으로 중국 여러 지방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유약을 이용한 도자기가 개발됩니다.

▲ (좌)육조시대(317년~589년). 청자의 시조인 병. 고화도 재유이다. 아티카 콜렉션 (중)당나라 시대의 부장품인 당삼채. 아티카 콜렉션 (우)오대 시대의 녹유병. 대북국립역사박물관
한나라 이후 혼란한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안정된 당나라 시절에는 '당삼채'라 불리는 채색 도기가 부장용(무덤에 넣어주는 용도)으로 많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온 유약(700~800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대에는 고온유(1200도 이상)도 계속 발전했습니다.

▲ 오대시대 색유의 일종인 녹유.
ⓒ 대북국립역사 박물관
당이 끝나고 오대 시대에는 고화도로 만들어진 기물이 서민들도 상용할 만큼 발전합니다. 이런 이유로 중국 각지에서 가마가 많이 생겨나고 유약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새로 만들어진 유약으로는 청자유, 백자유, 흑유, 황유가 있습니다. 동시에 도자기에는 문양이 조각되기 시작하고 유약에다 금속 안료를 사용하여 색유도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 (좌)남송 시대의 청자 봉황 꽃병 (우)원나라 시대에 만든 청자 꽃병.일본에서는 좌를 중요문화재로 우를 국보로 지정했다.
ⓒ 아티카 콜렉션
당나라, 오대 시대를 거쳐 송 시대에는 중국 역사상 문화의 최전성기이자 도자기의 전성기였습니다. 중국 문화의 정수라 부르는 '송나라 비색(秘色) 청자'가 이를 말해 줍니다. 이 때 바로 고화도 유약이 완성되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그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귀한 옥을 만들려는 마음에서 청자를 빚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중국인은 송나라 청자를 비밀스러운 유약이라 해서 '비색(秘色, 비밀의 색)' 청자라고 부릅니다.

한편 우리 나라에서는 한 세기가 지나 12세기부터 중국의 송자를 능가하는 고려 비색(翡色, 비취색) 청자가 만들어졌습니다. 옥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 비취라고 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고려 청자를 보고 비취처럼 아름답다 하여 고려청자를 '비(취)색 청자'라 격찬했다고 합니다. 이는 도자기의 종주국이라고 자처하는 중국인들이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인정한 것으로 청자에 대해서는 자기들이 한수 아래임을 자인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고려의 비색 청자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 청자의 태토 위에 입혀진 유약 때문입니다.

▲ (좌)고려 청자상감 동자보상화문 주전자. 일본 중요 문화재 (우)고려 청자 조각동녀형 연적. 일본 중요 미술품
ⓒ 아티카 콜렉션
유약. 이 유약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유리질이나 일반 유리는 도자기의 태토에 붙지 않습니다. 유리를 도자기라는 흙 덩어리에 입히는 기술 그 자체가 유약의 비법입니다.

유약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기본재인 장석, 규석 그리고 도석을 아주 잘게 분쇄합니다. 여기에 융재에 해당하는 나무재 또는 석회석 혹은 대리석을 일정량 섞어 물기를 가하면 찰기가 생깁니다. 이를 초벌구이한 기물에 잘 입힙니다. 그리고 1300도 정도의 불을 때면 유리질을 입힌 도자기가 탄생합니다. 이 유리질이 바로 유약입니다.

다음 편에는 우리 나라의 천연 유약의 신비를 이야기하겠습니다.
2004-05-06 17:17 ⓒ 2007 OhmyNews

출처 : 내장산제다원
글쓴이 : 심산 박동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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